[횡설수설/고미석]시끄러운 도서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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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69년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세계 최초의 도서관이 등장한다.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 들어선 대규모 도서관이다. 설립자는 아슈르바니팔왕, 설립 목적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의 위대함을 기억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약 3만5000장의 점토판이 발굴됐다. 그때 이후 도서관은 성장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탬핀스 도서관은 상업시설 한복판, 그것도 축구장 옆에 자리 잡고 있다. 5층 규모 도서관에 들어서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요리책 코너 옆에는 요리 교실이, 운동 건강 서적 옆에는 헬스장에서 봄직한 자전거가 마련돼 있다. 딱딱한 책걸상 대신 호텔 라운지처럼 편안한 1인용 소파에서 독서를 즐길 수도 있고, 열람실 대형 창문 너머로 축구 경기도 관람할 수 있다. 이 같은 변신은, 도서관이 단순한 독서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관심에 부응하고 그 일상에 파고드는 체험과 배움의 공간이란 사실을 깨우쳐 준다.

▷국내에도 독특한 도서관이 생긴다.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도서관이 아니라 가끔은 큰 소리를 내도 개의치 않는 도서관이 10월에 등장하는 것. 서울시는 ‘시끄러운 도서관 시범사업’ 대상 기관 6곳을 선정해 ‘느린 학습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느린 학습자란 발달장애가 있거나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불쑥 소리를 지르거나 산만하게 움직이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집어가는 등 예기치 못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시끄러운 도서관은 돌발행동에 대처 가능한 사서, 방음시설이 된 별도의 공간 등을 갖추게 된다.

▷느린 학습자를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도 필요하지만 보다 시급한 과제는 사회적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일이다. 새로운 도서관은 장애 비장애 구분 없이 운영되는데 이곳이 격리공간이 되지 않으려면 모두의 열린 마음이 요구된다. 언제 어디서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울리고 화합하는 일상이 친숙해지려면 도서관뿐 아니라 더 많은 공유 스페이스가 필요하다. 양쪽이 서로를 알아가는 기회와 소통창구가 늘어나는 것,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도서관#발달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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