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대변인’ 자임한 감사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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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대통령비서실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 감사 결과 2017년 5월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주말과 공휴일, 심야 등 사용제한시간에 사용한 게 총 2461건이었고, 주점 사용이 81건이었다고 어제 발표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이 같은 업무추진비 사용이 공무상 불가피한 집행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지었다. 업무추진비 사용에 문제가 없다고 손을 들어준 것이다.

특히 고급 일식집에서 사용된 청와대 업무추진비 43건에 대해 감사원은 고급 일식집은 사용 제한 업종이 아니고 지침 위반 기준이 없어서 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안이 중요한 청와대의 업무 특성을 고려해 달라”고 부연했다. 일부 업무추진비가 1인당 9만 원부터 시작하는 고급 일식집에서 사용된 것을 확인하고도 감사원은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는 이번 감사 대상이 아니라며 아예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청와대가 접대하는 곳이 아니라 업무를 추진하고 집행하는 곳이어서 청탁금지법은 판단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설명이다. 이 정도면 잘못을 찾아내 시정을 요구하기 위해 감사를 벌인 것인지, 야당 의원의 문제 제기로 도덕적 논란의 도마에 올랐던 대통령비서실의 때를 벗겨주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감사원은 또 대통령경호처가 규정상 사용이 제한된 사우나에서 업무추진비를 집행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평창 올림픽 준비팀을 격려하기 위한 명목이어서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 대신 처음부터 카드 결제를 차단하지 못한 일부 카드사에 책임을 돌렸다. 언제부터 감사원이 규정을 어긴 집행에 대해 구구한 변명을 들어줬는지 되묻고 싶다.

감사원은 전 정부 시절 임명된 KBS의 외부 민간인 이사에 대한 감사를 벌여 2년간 법인카드로 업무추진비 327만 원을 부당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퇴시킨 바 있다. 2500원짜리 김밥 구입도 문제 삼았다. 액수와 상관없이 사적 사용이 문제가 된 것이긴 하지만 방송사 외부 이사에 대해선 현미경을 들이대듯이 정밀감사를 해놓고 청와대 감사는 아예 눈을 감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감사 강도와 적용되는 잣대가 대상에 따라 차이가 난다면 코드 감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지난달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감사 결과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이번 감사 결과는 국민을 납득시키기는커녕 의혹만 키웠다. 청와대에는 솜방망이 감사를 해놓고 다른 기관에는 엄정하게 하려 한다면 누가 승복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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