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겨서 성폭행 대상 안돼” 伊고등법원 판결 뭇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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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판결문 공개되자 여성들 시위… 伊대법 “다시 재판하라” 돌려보내

관광여객선 정박지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 동부 해안도시 앙코나의 고등법원 재판부가 강간 범죄 피해자의 외모를 비하하고 이를 근거로 가해자들에게 어이없는 무죄 판결을 내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11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최근 이탈리아 대법원은 앙코나 고등법원의 여성 판사 3명이 2017년 내린 페루 출신 여성 강간 사건의 피고인 무죄 판결을 취소하고 가해 남성 2명에 대한 재판을 중부 내륙도시 페루자의 고등법원에서 다시 열라고 지시했다.

앙코나에 거주하는 가해 남성들은 2015년 페루 출신 22세 여성을 강제로 성폭행한 혐의로 이듬해 기소됐다. 피해자 측 신치아 몰리나로 변호사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사건 당일 동네 술집에서 만난 피해 여성의 술잔에 몰래 약물을 넣어 혼미한 상태로 만든 뒤 강간했다. 사건 직후 시행한 피해자의 혈액 검사에서 신경안정제용 화합물인 벤조디아제핀이 다량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최근 일반에 공개된 앙코나 고등법원 판결문에서 판사들은 “피해 여성의 외모를 살펴볼 때 ‘강간 범죄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남성적(too masculine to be desirable)’이므로 피해자의 증언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시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몰리나로 변호사는 “판결문을 읽으면서 정말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 여성의 외모가 못생겼으므로 가해자들이 그녀를 강간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사들의 이야기에 분노가 치밀어서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판결문이 공개된 후 앙코나 고등법원 건물 앞에는 여성 200여 명이 모여 “강간 범죄 피해자의 외모를 판결 척도로 삼은 판사들의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며 성토 집회를 열었다.

미국 일간 뉴욕포스트는 “페루자에서 다시 열릴 재판에 피해 여성이 참석할지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몰리나로 변호사는 “피해 여성은 가해자들을 경찰에 신고한 뒤 앙코나 지역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다가 페루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성폭행#고등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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