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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임우선]초등 입학 부모에게 돌봄 휴직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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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임우선]초등 입학 부모에게 돌봄 휴직을 허하라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입력 2019-03-12 03:00수정 2019-03-1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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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이번 ‘광화문에서’ 칼럼은 광화문이 아닌 ‘집에서’ 썼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3월 한 달간 회사를 휴직했기 때문이다. 휴직을 결정하기까지 내적 갈등이 많았다. 교육팀장을 맡으면서 알게 된 교육계 지인들은 아이의 초등 입학이 최대 고비라며 휴직을 권했다. 한 가까운 교사 지인은 ‘휴직을 안 하면 인생의 후회로 남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동료 기자들에게 업무 부담을 주는 것도 싫었지만 낮밤 없는 기자의 삶에서 입학할 때라도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면 평생 아이에게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안 했으면 애는 둘째 치고 내가 못 버텼겠다’ 싶은 상황이 많다. 초등 입학 자녀를 둔 모든 부모에게 국가가 한 달간의 휴직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여성 경력 단절 및 저출산 심화를 막기 위한 ‘0순위’ 정책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입학식 날부터 벌어졌다. ‘입학식만 치르면 다음 학교 방문은 3월 셋째 주 학부모 총회쯤이겠지’ 생각했는데 “내일 오전에는 학부모 연수가 있으니 강당으로 모이라”는 공지가 울려 퍼졌다. 휴직 안 했으면 어쩔 뻔. 아니나 다를까 당장 오후에 같은 워킹맘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야, 너희 애 학교도 학부모 연수한대? 나 내일 어떻게 해? 멘붕이야!”

다음 날에는 대학교 수강 신청보다 치열하다는 방과 후 수업 수강 신청이 있었다. 친한 동네 선배맘 왈 “인기 강좌는 3초면 마감되니 긴장하라”고 했다. 아이는 ‘마술’과 ‘줄넘기’ 수업을 꼭 듣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등교한 터였다. 심장이 쫄깃해졌다. 만약 실패하면 다음 방과 후 신청이 있기까지 석 달간 ‘고개 숙인 엄마’로 살아야 했다. 신청 개시 시간 20분 전부터 정좌하고 앉아 초속 클릭을 시도한 덕에 ‘마술’ 신청에 성공했다. 하지만 ‘줄넘기’ 수강은 실패했다. 만약 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했을 게 뻔했다. 쏟아지는 보도자료와 브리핑, 취재 스케줄을 감당한 뒤 저녁 늦게 퇴근 즈음에나 ‘맞다! 오늘 수강 신청이었는데!’ 하고 소리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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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낼 서류와 준비물도 계속 쏟아졌다. 엊그제는 ‘쓰레받기 길이가 15cm인 미니 빗자루 세트’를 사기 위해 동네 문방구와 마트 4곳을 헤맸다. 학교 유인물에는 ‘너무 커도, 작아도 안 좋고 15cm 정도를 권한다’고 돼 있었는데 품절인지 어딜 가도 10cm와 20cm만 있었다. 워킹맘의 지원군 ‘○팡 ○켓배송’도 싹 다 일시품절이었다. 만약 휴직하지 않았다면 오후 10시나 돼서야 호러영화의 주인공처럼 문을 연 문방구를 찾아 헤맸을 판이다.

엄마가 아닌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힘든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워킹맘의 자괴감은 대단한 일에서 오는 게 아니다. 아이가 홀로 빗자루 없이 등교해야 할 때, 제출 서류를 며칠째 못 보낸 걸 알았을 때, 아침부터 밤까지 야근 후 다시 새벽 2시까지 대리운전을 뛰는 심정으로 일과 육아를 해내도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라는 말을 반복해야 할 때, ‘아무것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나는 과연 무엇인가’란 감정과 함께 무너지는 것이다. 지난해 2, 3월에 회사를 그만둔 초등 저학년 워킹맘 1만5841명(보건복지부, 경력단절여성 실태조사)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이런 아픔이 있었으리라 본다.

휴직을 해 보니 한 달이라는 시간만으로도 워킹맘에게는 경력 단절의 고비를 넘길 처방이 되는 듯하다. 매일 아침, 배낭을 메고 교문 속으로 사라지는 작은 등을 지켜보는 것, 학교를 마치고 나온 아이의 손을 잡는 것, 그 시간 속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위안을 얻는 것이다. 160조 원을 쏟아붓고도 허탕 친 현금지원성 정책보다 초등 입학 한 달 휴직이 더 사려 깊은 저출산 대책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초등학교 입학#휴직#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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