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54〉바다 향을 품은 녹색 실크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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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부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해조류라 하면 흔히 김(홍조류)을 떠올리기 쉬운데 크게 파래, 매생이 같은 녹조류와 미역, 다시마와 같은 갈조류 등 분류가 다양하고 종류도 많다. 김은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서 양식한다.

한국의 밥상에서 흔히 보는 조미김은 맛도 있지만 얇고 바삭한 식감이 일품이다. 한번 맛을 보면 누구나 사랑에 빠진다. 나도 외국에 갈 때 가방 가득 김 선물을 준비한다. 한국은 김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다. 한 해에 1인당 180장을 섭취하는데 이는 일본인의 2배를 넘는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김은 ‘아사쿠사 김’이다. 1685년 도쿠가와 쓰나요시(1646∼1709)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어업과 사냥을 금지하는 ‘겐로쿠 살생 금지령’을 내렸다. 동시에 개와 고양이를 학대하면 사형에 처했다. 심지어 목줄도 금지했다. 풀어놓은 동물들로부터 주민들이 위협을 당하게 됐고, 위생 문제도 심각해졌다. 최악의 법을 만든 그는 ‘개 장군’이라 불렸다. 아사쿠사의 어부들은 남부의 에도 지역으로 이주를 했다. 바닷가 근처에서 자생한 김을 채취해 다지고 말렸다. 당시 아사쿠사에서 유명했던 종이를 만드는 방식을 그대로 김에 적용했다.

서구에서는 영국 웨일스에서 김과 버터, 오트밀 등을 튀겨 만든 ‘라버브레드’가 유명하다. 웨일스가 고향인 배우 리처드 버턴(1925∼1984)은 누구보다도 라버브레드를 즐겼다. 음식 대용이라기보다는 술을 위한 안주로 말이다. 그는 이 빵을 ‘웨일스의 캐비아(철갑상어의 알로 최고급 식재료를 의미)’라고 불렀다.

파래는 김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엄연히 다른 음식이다. 대부분 말려 분말 상태로 유통한다. 다코야키, 오코노미야키, 쌀 전병 등에 사용한다. 신선한 것은 국, 초무침, 조림, 샐러드를 만든다. 파래에 대한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 생선을 잡아 저녁을 준비하는 어머니에게 가져가곤 했다. 하루는 생선 대신 파래를 가져갔다. 어머니는 사람이 먹을 수 없으니 돼지죽을 쑬 때 넣으라고 했다. 내가 가져갔던 파래는 가공하지 않으면 먹지 못하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가공기술의 발달로 먹지 못하는 파래는 거의 없다.

내 고향 오키나와에는 김과 유사하지만 다른 ‘바다의 포도’ 또는 캐비아라 불리는 특산물 ‘우미부도’가 있다. 동그란 알갱이가 톡톡 터지는 느낌이 신비롭다. 어릴 적에 값이 비싸 아버지 술안주로만 구경할 수 있었다. 내게는 어려운 살림에 자식들까지 먹일 수 없었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김과 닮은꼴이라고 한다면 연녹색 실크처럼 가늘면서 바다 향을 고스란히 품은, 바다의 곱디고운 이끼로 혀를 감싸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매생이도 있다. 매생이는 청정 바다에서만 자라는 무공해 식품이다. 특히 간 해독 성분이 콩나물보다 3배나 높아 해장국으로 최고다.

한국에서 못된 사위에게 매생잇국을 끓여 주었다는 말을 들으면 웃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깊은 자식 사랑을 느낀다. 도쿄 해안가의 아사쿠사 김은 오래전 사라졌지만 한국의 매생이는 전 세계인이 한 번쯤 먹어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아사쿠사 김#파래#바다포도#우미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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