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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현대인을 위한 ‘집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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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현대인을 위한 ‘집의 사회학’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입력 2019-03-09 03:00수정 2019-03-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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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싶은 집에서 살고 있나요?/모나 숄레 지음·박명숙 옮김/496쪽·1만9000원·부키
세계를 주유하는 여행작가들조차 생각을 정리하고 가다듬는 데는 대개 자신의 집을 이용한다. 익숙한 사물들이 편안한 자리에 놓여 있는 곳, 집이야말로 사색의 고향이며 원대한 계획들의 출발점이다. 동아일보DB
단독주택이 좋은가, 아파트가 좋은가? 시내가 좋은가 전원주택이 좋은가? 3인이나 4인 가족에게 적당한 집의 넓이는 어느 정도인가?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독자라면 다른 책을 택하는 것이 좋다. 스위스 기자 겸 에세이스트인 저자의 시선은 ‘집이 인간 존재의 실현에 주는 역할’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긴 여정을 거쳐 바로 그 지점으로 돌아온다.

첫 장의 고백에 따르면, 저자는 집에 박혀 사는 ‘방콕’족이다. 저널리스트로서 미덕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칩거와 평온한 일상이 없다면 글은 탄생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그는 집에서 보내는 고독을 자신만만하게 옹호한다. 그러므로 저자가 가장 우선시하는 장소는 ‘서재’다. 독서를 위한 공간은 몸을 웅크리고 쉴 수 있는 둥지이자 관찰과 관조의 장소여야 한다.

그러나 세상과 서재의 관계는 바뀌고 있다. 책상 위 컴퓨터로 세상이 쏟아져 들어온다. 유용한 정보들을 벽에 붙여두던 취미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담벼락을 장식하는 것으로 바뀌어간다. 고립 속에 안온했던 나만의 서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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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으면 고독이 필수영양소인 글쟁이의 ‘내 집 예찬’ 정도로 이 책을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다음 장에서 작가는 대문을 나서 ‘집’이라는 주제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끌고 간다.

사회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적절한 집을 허용할까.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집을 사며 진 빚을 갚는 기간은 2000년대 첫 14년 동안 13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났다. 안락한 집이란 삶의 출발이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평생 노력해도 도달할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다.

안락한 집을 결국 구하고 나면, 충만한 삶이 가능할까. 종일 일터에서 시달리다 보면 저녁이나 주말에 집은 안락한 시간을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가 집에 시간을 들이기를 요구한다. 시간 분배의 왜곡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집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불평등한 성(性) 정치학도 작동한다. 프랑스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거하는 커플 중 남성은 하루 1시간 17분, 여성은 2시간 59분을 집안일에 썼다. 모두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얘기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간다. ‘집’이란 남성과 여성,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위한 그릇일까. 그런 생각은 “다양성과 대담함이 부족한 행복 이미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직접 답을 주기보다 독신자 등 여러 모습의 ‘가정’들로 구성된 공동체적 주거, 개인의 독립을 더 폭넓게 제공하는 주거 등 다양한 가능성을 제3자의 입을 들어 소개한다.

마지막 장 ‘이상적인 집을 상상하기’에서 저자는 개인의 영역으로 되돌아와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집을 ‘상상’한다. 이 장에서는 ‘검소함, 투박한 재료, 시간과 함께 변화하는 능력’을 가진 일본 건축에 대한 경모가 읽힌다. 너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인용한 “아름다움은 말이 많아서는 안 되며, 침묵의 요소를 포함해야만 한다”는 말은 일본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말이다. 야나기는 한국 민예의 소박성에 깊이 매료됐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을 회사에서 마감에 쫓기며 읽었다. 저자의 말대로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자리에 누운 채 집 안팎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천장을 쳐다보며 이런저런 몽상에 잠길” 수 있는 날, 집의 서재에서 천천히 다시 읽고 싶어졌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지금 살고 싶은 집에서 살고 있나요#모나 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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