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은 흥분된다!”…유리천장에 도전하는 바비 인형 60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8일 17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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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You can be anything).’

오늘(9일)로 60번째 생일을 맞은 바비 인형에 담긴 철학이다. 1959년 세상에 바비 인형을 선보인 루스 핸들러는 “소녀는 그가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여성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바비가 대변한다”고 말했다. 핸들러는 바비 제작사인 마텔의 공동대표였다.

어느새 환갑이 된 바비가 전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비현실적인 몸매로 미(美)의 기준을 왜곡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지만, 바비는 여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조명하는 데 주력함하면서 비판에 맞서고 있다. 바비 자신의 플라스틱 천장을 넘어 사회의 유리 천장(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사회적 장애물)을 깨려는 도전도 이어가고 있다.

● 바비의 메시지, “모험은 흥분된다!”

마텔은 지난해 ‘드림 갭 프로젝트(dream gap project)’를 선보였다. 소녀들이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벽에 막혀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성차별의 간극(갭·gap)을 줄이기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마텔은 미국 내에서 바비 인형 한 개가 팔릴 때마다 1달러씩 기부해 드림 갭 프로젝트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연구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여성들의 잠재력을 가로 막는 사회적 장애물에 대한 조사도 하고 있다.

사실 고정된 성 역할을 넘어서고자 한 것은 지난 세기 바비가 이룬 의미 있는 업적이다. 다양한 복장의 바비 캐릭터들을 통해 간접적인 ‘직업 체험’을 함으로써 여성들이 다양한 직업에 도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변화에 따른 바비의 직업 변천사는 흥미롭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패션 에디터, 간호사, 항공승무원 등 여성 종사비율이 높은 직업의 바비가 출시됐다. 1973년 외과의사 바비가 출시되면서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됐고 80~90년대에는 최고경영자(CEO), 파일럿, 경찰관, 소방관 등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직업의 의상도 입었다. 최근에도 컴퓨터 엔지니어, 카레이서, 건축업자 등 바비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마텔은 바비 탄생 60주년을 맞은 올해 내셔널지오그래픽과 협력해 천체물리학자, 야생동물 환경보호 활동가, 극지해양생물학자, 야생동물 사진작가, 곤충학자 등 여성 과학자 바비 인형을 내놓기로 했다. 여성 전공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과학 분야에 대해 소녀들이 관심을 갖도록 한다는 의도다.

마이애미대 영문과 셰리 아네스 교수는 “장난감은 중요하다. 성인이 되어 어떤 삶으로 나갈지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비가 나오기 전 여자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은 대개 아기인형이었다. 아네스 교수는 “아기인형은 여자아이들에게 모성과 가정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소녀들이 어머니가 되는 것이 그들에게 열려진 자연스런 역할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했다”면서 “바비는 어린 소녀에게 다양한 직업을 탐구해 보라고 권하고, 모험을 하는 것은 재미있고 흥분된다고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뚱뚱한 바비, 휠체어 바비…다양성 포용의 시대

마텔은 소녀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롤 모델들도 인형으로 제작해 선보이고 있다. 세계 각국의 여성 유명인사들을 집중 조명하는 ‘more role models’ 프로그램이다. 세계적인 여성 화가로 꼽히는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 평창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한국계 미국인 스노보드 선수 클로이 김, 아시아 테니스 선수 최초로 단식 세계랭킹 1위를 한 일본의 오사카 나오미 인형 등을 만들었다. 이 인형들을 가리키는 이름은 ‘쉬어로(Shero)’로 붙여졌다. ‘여성 영웅’이란 뜻이다. 21세기의 화두가 된 페미니즘을 반영한 시도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장은 “최근 기업의 윤리 의식이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한 만큼 이 같은 움직임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논란도 있다. 바비 인형의 직업을 통해 과연 여성들이 실제로 해당 직업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있느냐는 물음도 나온다. 직업상을 현실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지난달 선보인 곤충학자 바비는 분홍색 조끼를 입고 손에는 우아하게 나비를 쥐고 있다. 옷에 흙탕물 하나 튀지 않은 모습이 실제 곤충학자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바비가 오랫동안 시달려온 또 다른 비판은 아름다운 백인여성을 미의 기준으로 세웠다는 것이다. 이 비난을 해소하고자 마텔은 흑인과 아시안, 히스패닉 바비 등을 선보였고 2016년엔 통통한 몸매의 ‘커비 바비’, 키가 작은 ‘프티 바비’ 등 보다 현실적인 신체비율의 인형을 출시했다. 지난달 발표한 신제품 중엔 휠체어를 탄 바비, 의족을 달고 있는 바비가 포함됐다.

마텔의 전략은 들어맞는 분위기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장난감 매출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마텔 역시 2012년부터 4번이나 CEO를 갈아치웠고 2013년 이후 매년 매출 감소를 기록했다. 그러나 바비는 휴가와 크리스마스 시즌이 모두 지난 지난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24% 이상 상승하면서 주목받았다. 완구산업 컨설팅회사 ‘글로벌토이엑스퍼츠’의 대표인 리처드 고틀립은 “피부 색깔, 신체 크기에 다양성을 부여한 것이 바비의 매출 신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고틀립은 “바비의 이런 다양성은 아이들이 아니라 학부모들을 겨냥한 것”이라면서 “아이들이 갖고 노는 인형을 통해 좀더 현실적인 외모를 경험하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바비의 구매를 꺼리다가 최근 바비의 변화에 호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강홍구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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