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게이트’ 수사기밀, 영장판사들이 빼내 행정처 공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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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사법남용 공소장에 적시… “임종헌 지시로 수사보고서 복사
수석부장판사 거쳐 행정처 유출… 보안유지 위해 문건에 암호 걸어”

검찰의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들이 유출한 수사 기밀이 형사수석부장판사를 거쳐 법원행정처에서 공유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조의연 서울북부지법 수석부장판사(53)와 성창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47)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으로 근무하던 2016년 5∼9월 정운호 게이트 연루자의 체포영장과 계좌추적영장, 통화 기록, 구속영장 등에 담긴 세부 내용을 신광렬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54)에게 보고했다. 유출된 수사 기밀은 “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49·수감 중)가 아직까지는 현직 청탁 상대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계좌추적 결과 김수천 당시 부장판사(60·수감 중)의 딸 계좌에 1800만 원이 입금됐다” 등이다.

2016년 4월 당시 수감 중이던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구치소에서 최 변호사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자 판사 출신 전관예우 문제로 검찰 수사가 확대되고 있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0·수감 중)은 신 전 수석부장판사에게 “검찰의 수사 상황을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다. 조서 등 중요 자료는 복사해 달라고 했다.

신 전 수석부장판사는 영장전담 판사들에게 이 같은 지시를 전달했다. 영장전담 판사들은 법원 직원들에게 누설되지 않도록 수사보고서를 직접 복사해 신 전 수석부장판사에게 건냈다.

같은 해 6월 임 전 차장은 김 전 부장판사 등 현직 법관 7명과 그 가족 등 31명의 명단을 신 전 수석부장판사에게 보내며, 더 엄격히 영장을 심사하라고 지시했다. 명단 파일은 영문으로 대법원의 약자인 ‘scourt’라는 암호가 걸려 있었다.

신 전 수석부장판사는 이 파일을 영장전담 판사들에게 보냈고, 그 뒤 김 전 부장판사 가족에 대한 계좌추적과 통신조회영장 등이 기각돼 수사에 지장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유출된 수사 기밀은 법원행정처에도 공유됐다. 김 전 부장판사는 당시 법원행정처의 감찰 조사를 받으면서 수사 상황을 파악한 당일 뇌물 공여자를 찾아가 허위 진술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이 확보한 법원행정처 문건에는 ‘당시 검찰 수뇌부가 정 전 대표의 도박 사건을 봐줬다는 의혹을 제기해 검찰 조직에 치명상을 입히자’는 방안이 담겨 있었다. 이 방안은 실행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수사 기밀 유출이 명백한 불법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이 영장전담 판사들의 기소 여부를 논의할 당시 “영장전담 판사가 영장 정보를 상사에게 보고한 것은 ‘재판권 상납’”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검찰은 공소장에 “영장 심리 자료가 유출되면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적정한 형벌권 실현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전주영 기자
#정운호 게이트#수사기밀#영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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