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넌의 극우결집, 유럽선 안통하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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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책사’ 스티브 배넌(사진)이 유럽에서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넌은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30%로 돌풍을 일으키겠다”고 장담했지만 정작 극우,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당들은 꺼리고 있다.

배넌은 지난해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무브먼트’라는 정치 단체를 만들었다. 정당이 아니라 클럽의 형태로 유럽 포퓰리즘 정당을 통합하고 선거 미디어 전략을 전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후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의 포퓰리즘 정당들은 배넌을 만나 선거와 관련해서 조언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선거가 다가오자 배넌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배넌은 올 1월 유럽 포퓰리스트 정당 대표들의 모임을 계획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했고 모임은 무기한 연기됐다. 극우 포퓰리즘 성향의 유럽민족·자유(ENF)그룹 대변인은 “우리는 배넌이 주도하는 모임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가 주권과 정체성 회복을 강조하는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은 외국인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 대표는 “배넌은 유럽 출신이 아닌 미국인”이라며 “우리의 자유와 주권과 관련된 선거이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극우 정당 동맹의 관계자는 “배넌은 우리와 함께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돈을 쫓는 미국인일인 뿐”이라며 불신을 드러냈다. 실제 배넌은 “유럽 자유주의 세력의 후원자 역할을 하는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혀 선거를 이용해 돈을 모으려는 게 아니냐는 경계의 시선도 존재한다.

EU 의회의 포퓰리즘 정파인 ‘자유와 직접민주주의 유럽(EFDD)’ 관계자도 “배넌은 유럽과 하나가 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유럽과의 동맹을 소홀히 해 배넌이 민심을 잡을 때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다. 배넌과 함께 ‘무브먼트’를 이끄는 벨기에 극우 정치인 미카엘 모드리카멘은 “배넌이 너무 낙관적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배넌도 최근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장벽 설치를 후원하는 모임에 참석하는 등 유럽보다는 미국 활동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한편 극우 포퓰리즘 진영에 맞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유럽의회 선거에 시동을 걸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은 “마크롱 대통령이 선거 슬로건으로 유럽을 부흥시키겠다는 뜻의 ‘르네상스’로 정했다”고 6일 보도했다. 그의 ‘유럽 르네상스를 위한 구상’은 독일 네덜란드 등 친(親)EU 성향의 정상뿐만 아니라 헝가리, 루마니아 등 반(反)EU 성향의 정상도 지지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배넌#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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