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언 “덜컹덜컹 고단했던 고려인의 강제이주 길 떠올리며 곡 만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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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서 창작 교향곡 ‘디아스포라’ 공개하는 재일음악가 양방언 씨

최근 서울 중구 국립극장 연습실에서 만난 전방위 음악가 양방언 씨. 그는 “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교향곡을 만들어가면서 21년 전 런던필하모닉과 처음 협연하던 때처럼 설렌다”고 했다. 국립극장 제공
최근 서울 중구 국립극장 연습실에서 만난 전방위 음악가 양방언 씨. 그는 “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교향곡을 만들어가면서 21년 전 런던필하모닉과 처음 협연하던 때처럼 설렌다”고 했다. 국립극장 제공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이자 아시아의 대표적 크로스오버 음악가인 양방언 씨(59)가 교향곡 창작에 도전했다. 1937년 연해주의 고려인 강제이주 여정을 국악관현악으로 그려낸 대서사시다.

최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만난 양 씨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카자흐스탄 알마티까지 열흘 정도 이동했다”며 “지금도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당시엔 더 고단했을 그 길을 상상하며 악상을 떠올렸다”고 했다.

양 씨는 이렇게 만든 교향곡 ‘디아스포라’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21일 여는 ‘양방언과 국립국악관현악단―Into The Light’ 공연에서 공개한다.

“최종 목적지인 알마티 인근 바스토베 언덕의 고려인 묘역에 닿자마자 충격이 밀려들었습니다. 현장에 피아노를 설치해 현지 고려인 후손 음악가와 협연한 것은 가슴 벅찬 일이었지요.”

그는 기자를 향해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를 펼쳤다. 묘역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며 다시 회한에 잠긴 듯했다. 사방으로 지평선이 허허한 광야에 도열한 묘비가 강제이주의 참상을 짐작하게 했다.

양 씨는 “저 자신도 어찌 보면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이기에 감정이 더 잘 이입됐다”고 했다. 그는 1960년 일본 도쿄에서 재일동포 2세로 태어났다. 1980년대 일본에서 마취과 의사와 음악가 활동을 병행하다 전업 음악가로 나섰다. 1999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주제곡을 만든 것을 계기로 한일 양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음악세계는 품이 크다. 클래식, 재즈, 각국 민속음악 등 여러 장르를 뒤섞는 게 장기다. 다큐멘터리(‘차마고도’ ‘도자기’), 영화(‘천년학’), 온라인게임(‘아이온’)과 여러 국가행사를 위해 창의적 대곡을 만들어왔다.

첫 다악장 교향곡을, 서양악단도 아닌 국악관현악단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은 그에게도 무모하다시피 한 도전이었다고 했다. 믿은 것은 상상의 힘.

“1937년 고려인들이 몸을 실었을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했을 겁니다. 그 열차가 덜컹였을 박자를 상상해 미니멀리즘 같은 불규칙한 리듬에 담았죠. 그 위에 아리랑이나 새로 창작한 슬픈 선율을 얹었어요. 차창 밖으로 흘렀을 고려인들의 막막한 정서적 풍경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고려인의 황망함과 극복 의지를 상상하며 곡을 쓰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떠오른 건 21년 전 발표한 ‘아리엔느의 실’이다. 그리스 신화 속 크레타의 미궁을 묘사한 음악이다.

“절망적 디아스포라에서 해결을 찾는 과정은 풀 수 없이 엉켜버린 실 뭉치 같았습니다. 국악기들이 저마다 실 잣듯 풀어내는 개별적 선율이 점차 섞이면서 전체 악곡이 서서히 이행하죠.”

뒤엉킨 실을 해결하는 마지막 테마는 아리랑이다. “아리랑이되 새로운 아리랑”이라고 그는 귀띔했다.

“카자흐스탄의 광막한 묘역에서 연주하며 생각했어요.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부르며 위로받았을 그 아리랑이 이젠 미래의 모습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요. 이 교향곡 역시 역사처럼 숨쉬고 진화할 수 있도록 책임지고 키워보려 합니다.”

그의 여정은 KBS TV 특집 다큐멘터리 ‘아리랑로드’에서 29일부터 방영된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양방언#디아스포라#고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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