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가장 진지하게 이해하는 길은 5000년 사상사 공부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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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치사상사 완역한 장현근 교수

장현근 교수는 “중국 포털 ‘바이두(白度)’가 나왔을 때(번역 작업이 간편해져서) ‘살았다’ 싶었다. 그 전엔 한자 한 자 컴퓨터 자판으로 입력하느라 고역이었다”고 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장현근 교수는 “중국 포털 ‘바이두(白度)’가 나왔을 때(번역 작업이 간편해져서) ‘살았다’ 싶었다. 그 전엔 한자 한 자 컴퓨터 자판으로 입력하느라 고역이었다”고 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번역자가 궁금해지는 책은 드물다. 3권으로 구성된 ‘중국정치사상사’(글항아리)는 그 흔치 않은 호기심을 불렀다. 보통 책 10여 권을 쌓은 높이. 어깨가 뻐근할 정도의 무게. 심지어 한자! 무엇이 그를 완역으로 이끈 걸까.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옥에서 만난 장현근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56)는 “첫눈에 후학에게 꼭 필요한 자료란 걸 직감했다. 그 믿음으로 20년 번역 가시밭길을 견뎠다”고 했다.

2015년 말 중국 톈진(天津) 난카이(南開)의 류쩌화 교수(왼쪽) 자택을 방문한 장현근 교수. 장현근 교수 제공
2015년 말 중국 톈진(天津) 난카이(南開)의 류쩌화 교수(왼쪽) 자택을 방문한 장현근 교수. 장현근 교수 제공
“책이 1996년에 나왔고 1998년부터 번역을 시작했어요. 당시 샤오궁취안(蕭公權)의 ‘중국정치사상사’ 영어본 번역이 있긴 했지만 다소 어렵고 서양이론에 입각한 면이 컸죠. 원전 인용이 훨씬 방대한 데다 토박이 교수가 쓴 책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봤습니다.”

책은 중국 대륙을 훑고 간 5000년 사상의 흐름을 꿰어냈다. 지난해 세상을 뜬 류쩌화(劉澤華) 난카이대 교수와 제자 7명이 함께 썼다. 총 3권에 △선진시대 △진한과 위진남북조 시대 △수당 송원 명청 시대를 차례로 다룬다. 장 교수는 “한동안 단절된 중국정치사상사의 물꼬를 튼 책”이라며 “중국에서도 엄청난 노작으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문사철의 요체인 중국사상사에 대한 학문이 근대 이후 단절기를 겪었어요. 마르크스주의와 마오(毛澤東·마오쩌둥)주의가 학계를 지배했죠. 하지만 류 교수의 노력으로 1980년부터 독립된 분과학문으로 대접받기 시작했고, 현재 제자 60여 명이 중국 전역 대학에서 후학을 기르고 있습니다.”

중국은 문사철 강국이다. 그 힘은 문명이 발생한 직후부터 이어온 사상경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책은 사상사를 정치 관점에서 조명한다. 저자는 책에서 “서양과 달리 중국 사상사에서는 왕권주의가 도드라지며, 왕권주의는 사회 형태와 권력 체계는 물론 관념 체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장 교수는 “왕권주의를 비판적으로 살핀 책”이라며 “중국을 가장 진지하게 이해하는 길은 사상사 공부”라고 했다.

“정치로 세상을 구원하려 한 공자(孔子), 학문적 깨침을 중시한 왕양명(王陽明)이 주는 울림은 역시 대단해요. 황종희(黃宗羲)는 제왕의 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는 점에서 돋보입니다. 책으로 자기 성취를 이루려 한 한나라의 왕충(王充)도 인상 깊고요.”

3권 도합 15만 원. 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구입 문의를 해오는 개인 독자가 적지 않다는 후문. “명상하듯 하루에 조금씩, 두꺼운 통사를 읽어가는 독자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게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의 설명이다. 장 교수는 어떤 이에게 책이 가닿길 바랄까.

“중국사상사는 곧 우리 한반도의 사상사이기도 합니다. 과거 뛰어난 사상학자는 모두 조선 땅에 있었고, 지금도 지방 서원에 가면 어르신들이 사상사를 줄줄 읊어요. 고전을 읽기 전 해당 부분을 다룬 사상사로 머리를 틔우길 권합니다. 사전처럼 옆에 두고 ‘발췌독’(필요할 때 조금씩 발췌해 읽는 독서)하면 훨씬 흡수가 빠를 겁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장현근 교수#번역#중국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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