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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유재동]신과 인간의 직장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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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유재동]신과 인간의 직장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입력 2019-02-13 03:00수정 2019-02-13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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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경제부 차장
①공기업 직원 ②대기업 정규직 ③중소기업 직원 및 비정규직 근로자 ④생계형 알바생 ⑤구직자(실업자)

한국 노동시장에는 이런 중층(重層)의 계급 구조가 형성돼 있다. 1은 구직자들이 가장 선망하는 최상층 계급, 그 아래로 갈수록 선호도가 떨어진다.

이 카스트의 가장 큰 특징은 ‘고착화’다. 한번 1이나 2가 되면 좀처럼 3, 4, 5로 떨어지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1, 2에선 거의 빈자리가 나지 않아서 3∼5는 정말 어지간해선 1, 2로 올라서기 힘들다. 한마디로 유연성과 역동성이 제로에 가깝다.


우리 계급 구조가 원래부터 이렇게 복잡하지는 않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1에서 3까지는 큰 차이가 없었다. 3의 임금도 1이나 2의 90%에 달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상황이 변했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노조 활동이 활발해지고 외환위기까지 겪으면서 1, 2와 3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1, 2는 어느새 전체 취업자의 10% 정도에게만 허락된 선택받은 자리가 됐다. 1, 2의 임금 상승에는 일정 부분 3, 4의 희생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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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와 3의 격차가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와중에 최근에는 옛날에 없던 4가 생겼다. 원래 4와 5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백수들이 용돈벌이를 위해 종종 알바를 하면서 4와 5는 수시로 경계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실업 기간이 길어지고 생계비 마련의 필요가 커지면서 4도 하나의 직업군으로 자리 잡았다. 요즘엔 같은 4라도 ‘주휴수당을 챙겨 받는 풀타임 알바’(4-1)와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메뚜기 알바’(4-2)로 세부 계급이 나뉜다(근무 여건이 좋은 관공서·사무직 알바와 상대적으로 열악한 식당·편의점 알바로 나누기도 한다).

이처럼 계급이 분절되고 격차가 벌어지면서 상호 이동은 더욱 단절됐다. 특히 3에서 1이나 2로 오르는 건 정말 드문 일이 됐다. 중소기업 취업 1년 후 대기업으로 옮기는 비율은 2.0%,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4.9%에 그친다(2015∼2016년).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선진국에서는 5에서 중간단계인 3, 4를 거쳐 1, 2로 가는 게 정상인데, 우리나라는 5에서 바로 1, 2를 도전하고 그게 안 돼도 몇 년째 5로 지내며 같은 무리수를 반복한다. 3 역시 항상 1이나 2로 갈아탈 기회만 엿본다. 중소기업에서 아무리 잘나간다 한들 연봉이나 처우가 1, 2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이 문제를 세금을 들여 해결하려 했다. 3을 공공기관이 조건 없이 끌어안아서 1로 올리거나, 보조금을 줘서 2와 소득을 비슷하게 맞춰줬다. 또 최저임금을 잔뜩 인상해 일부 3, 4의 월급도 강제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 때문에 3, 4의 상당수가 5로 전락하는 부작용만 일으켰다. 4의 자리가 희소해지다 보니 한때 사실상 같은 계급이었던 4와 5 간의 격차도 이전보다 벌어지고 말았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일단은 1, 2를 충분히 확보하고 능력 있는 3∼5에게 언제든 그 자리로 올라설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견고한 기득권인 대기업·정규직 노조에 대한 과보호를 풀어 고용시장의 활력을 유도하는 게 급선무다. 기술 혁신과 규제 완화로 3에서 1, 2 못지않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

콘크리트같이 딱딱한 계급 피라미드를 시장 흐름과 개인의 노력에 따라 유연하게 만드는 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노동개혁의 본질이다. ‘쉬운 해고’로만 잘못 알려진 노동 유연성의 확보가 이래서 필요하다. 풀리지 않는 일자리 문제의 해법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공기업 직원#노동시장#대기업 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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