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北비핵화, 한미 생각 같아”… 靑 “스몰딜, 정부입장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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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실무협상서 종전선언-核부분신고 ‘하노이 선언’ 윤곽

외교부 찾은 비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오른쪽)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 평양 실무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비건 대표는 “북한과의 대화는 생산적이었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는 10일 오전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외교부 찾은 비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오른쪽)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 평양 실무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비건 대표는 “북한과의 대화는 생산적이었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는 10일 오전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간단치 않은 인물이더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6∼8일 평양 실무협상에서 마주한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對美)특별대표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다. 평양 실무협상에서 ‘빅딜’을 요구한 미국에 북한이 만만치 않은 상응 조치를 요구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도 비건 대표는 2박 3일의 최장기 방북 실무협상 결과에 대해 “생산적인(productive) 논의였다”고 밝혔다.

○ 종전선언-영변 부분 신고는 의견 모아

비건 대표는 평양 실무협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다음 날인 9일 광폭 행보를 펼쳤다. 오전 10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접견한 것을 시작으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한미,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가졌다. 이후 오후 4시에는 청와대를 찾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오후 5시에는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정병국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을 만나 평양 실무협상 결과를 공유했다. 토요일 반나절 동안 광화문 일대를 누비며 청와대와 외교부, 국회는 물론 일본까지 자신의 방북 결과를 설명하는 밀도 있는 행보를 펼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실무협상의 결과에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비건 대표가 평양에서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며 “비건 대표를 면담한 정 실장의 평가는 큰 방향에서 북-미 회담이 잘 움직이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교 소식통은 “비건 대표가 평양 실무협상으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그린 라이트(청신호)’가 들어왔다는 취지의 반응을 보였다”고도 했다.

실제로 북-미는 평양 실무협상에서 종전선언과 영변 핵시설에 대한 부분 핵 신고를 ‘하노이선언’에 담는 데 대해선 의견을 좁힌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종전선언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실무협상에선 영변 핵시설 부분 신고 시한까지 구체적으로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싱가포르 합의 이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던 비핵화에 착수하기 위한 최소 성과는 합의했다는 얘기다.

○ 제재 완화 걸고 새로운 카드 제시한 北

관건은 북-미가 16일 앞으로 다가온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빅딜’에 합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청와대는 비건 대표가 정 실장을 만나 “We are on the same page(한미의 생각은 같다)”고 말했다는 점을 공개하면서 “우리 정부의 입장은 ‘스몰딜’이 아니다”라고 했다.

북-미는 평양 실무협상에서 서로의 카드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전에 못 들었던 ‘실질적인 내용’이 논의됐다”며 “비건 대표가 실무협상이 건설적이고 생산적이었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롭게 논의된 ‘실질적인 내용’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밝힌 ‘영변 이상의 조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영변 핵시설 외 우라늄 농축시설 폐쇄, 핵무기 신고, 미국이 요구해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등이 논의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북한은 제재 완화를 최우선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우선순위는 제재 완화가 첫 번째고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사업 재개, 종전선언도 요구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비건 대표가 ‘정확히 짚고 있다. 그 사안별로 환경에 따라 대처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했다.

○ 북-미 다음 주 후속 협상서 비핵화 로드맵 논의

북-미는 평양 실무협상에 이어 다음 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베트남 하노이에서 후속 실무협상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상에서 서로의 카드를 확인한 만큼 후속 협상에서 비핵화 로드맵을 작성하기 위해 비핵화 조치와 상응 조치를 조합하기 위한 시퀀싱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회담의 의전과 경호를 위한 실무협상도 함께 열리는 투트랙 협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빅딜을 위한 후속 실무협상에 한국이 중재자로 참여할지도 관심이다. 김 대변인은 “한미 간 정상 차원에서도 논의를 할 예정”이라며 “한미 간에는 직접 만나기보다는 통화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고 밝혔다. 한미 정상 간의 통화가 이뤄진다면 지난해 9월 이후 5개월여 만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3, 14일 폴란드에서 열리는 중동 평화안보 증진을 위한 장관급 회담에서 폼페이오 장관과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문병기 weappon@donga.com·홍정수·한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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