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이유종]독일의 ‘경복궁 재건’, 소통이 해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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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독일 베를린궁. 1950년 옛 동독이 철거했던 베를린궁은 논란 끝에 연방하원에서 재건이 결정돼 9월 박물관, 도서관으로 문을 연다. 사진 출처 훔볼트포럼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독일 베를린궁. 1950년 옛 동독이 철거했던 베를린궁은 논란 끝에 연방하원에서 재건이 결정돼 9월 박물관, 도서관으로 문을 연다. 사진 출처 훔볼트포럼

이유종 국제부 차장
이유종 국제부 차장
올해는 현대 생태학 창시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의 탄생 250주년을 맞는 해이다. 독일 베를린에선 그의 이름을 딴 ‘홈볼트포럼’이 진행 중이다. 중심가 운터덴린덴에 박물관과 도서관을 새로 짓는 계획이다. 베를린민속박물관과 훔볼트대가 소장한 아시아, 아프리카 유물 2만 점 이상을 옮겨 놓는다. 바로크 양식의 신축 건물 외관 공사는 거의 완료됐고 개관은 훔볼트 탄생일에 맞춰 9월 중순으로 잡혔다.

훔볼트포럼이 들어설 곳은 우리의 경복궁에 해당되는 옛 베를린궁이 있던 자리다. 2만9000m²의 터에 독일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을 이끈 호엔촐레른 가문이 1443년부터 거주했다. 호엔촐레른 가문의 수장의 체급이 공작, 왕, 황제로 올라가면서 귀족 저택은 왕궁, 황궁으로 변했다. 상비군 양성에 전념했던 ‘군인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시기(재위 1714∼1740년)에는 20세기 중반까지 유지됐던 궁의 모습도 갖춰졌다.

베를린궁의 운명은 기구했다. 1918년 독일제국이 무너지고 바이마르공화국이 선포되면서 박물관으로 변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 공습으로 철저히 파괴됐다. 1950년 이 건물을 나치와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봤던 발터 울브리히트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사회주의통일당 서기장은 아예 철거를 명령했다. 철거에만 6개월이 걸렸다. 이 자리엔 1976년 콘크리트 건물인 ‘공화국궁전’이 지어졌고 동독 의회가 입주했다.

1989년 10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공화국궁전을 고깝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기업인 출신 빌헬름 폰 보딘(77)은 1992년 베를린궁협회를 세우고 건축가들과 재건 운동에 나섰다. 베를린 중심이라는 위치와 역사, 통합 등을 고려할 때 꼭 다시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콘크리트 건축물에서 석면이 검출됐다는 환경적 이유까지 들먹였다. 건물 자체가 동독을 상징하는 일종의 역사이기 때문에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았다. 이에 공화국궁전보전협회는 건물을 개축해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처럼 문화 시설로 활용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황궁이 다시 세워지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오시(동독인)’와 ‘베시(서독인)’는 이견을 보였다. 절반 이상의 서베를린인은 재건에 찬성했지만 동베를린인 절반 이상이 반대했다. 사회주의통일당의 후신 민주사회당(PDS) 등은 “더 나쁜 디즈니랜드를 만들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당시 정치권은 ‘뜨거운 감자’ 베를린궁 재건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베를린궁협회는 베를린공대에서 옛 사진과 그림을 찾아내 구체적인 건축 계획을 만들고 건축 기부금까지 모았다. 독일역사박물관(옛 무기고), 베를린대성당 등 인근 건축물과 공존하려면 옛 베를린궁을 재건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여론은 요동쳤다. 2005년 절반 이하였던 찬성률은 2010년 70∼80%로 높아졌다.

민심이 바뀌자 정치권도 반응했다. 논란이 거듭되자 연방하원에서 건축지원안이 표결에 부쳐졌다. 보수 기독민주연합(CDU)-기독사회연합(CSU)과 자유민주당(FDP), 진보 사회민주당(SPD), 동맹90·녹색당이 모두 재건에 찬성했다. PDS 계열 정당만 반대했다. 하원 예산위원회는 논쟁 20년 만인 2011년 7월 4일 5억9500만 유로(약 7600억 원)의 지원안을 승인했다. 옛 동독 공화국궁전은 철거됐고 2013년 6월 요아힘 가우크 당시 독일 대통령이 기공식의 첫 삽을 떴다.

여전히 논쟁은 남았다. 건물 활용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헤르만 파르칭거 프로이센문화유산재단 대표는 “프랑스 파리의 케브랑리박물관처럼 식민지 시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박물관은 원하지 않는다. 독일의 식민 역사는 짧았지만 그래도 끔찍한 일이 많았다”고 전했다. 독일군이 옛 식민지 나미비아에서 인종 청소를 진행했다는 내용은 훔볼트포럼의 전시에도 반영될 예정이다.

광화문광장의 동상 이전을 놓고 여당 대선 주자급 거물들도 이견을 드러낸다. 계획안이지만 정부 내에서조차 소통하지 않았다. 여론은 안중에도 없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도 여론, 역사성, 현실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추진되다가 결국 무산됐다. 승자의 유물만 전시하는 게 역사는 아니다. 동독의 낡은 콘크리트 유물도 역사의 일부분이다. 낡은 유물을 치우려면 반대 여론까지 살핀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 통해야 통한다.
 
이유종 국제부 차장 pen@donga.com
#베를린궁#홈볼트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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