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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말잔등에 올라탄 문명, 인류의 운명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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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말잔등에 올라탄 문명, 인류의 운명을 바꾸다

김기윤 기자 입력 2019-02-09 03:00수정 2019-02-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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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세계사/피타 켈레크나 지음·임웅 옮김/752쪽·3만8000원·글항아리
덴마크에서 출토된 기원전 2000년 투른홀름 제례용 전차 축소 모형. 바퀴 위에 서 있는 말의 조각이 태양 모형을 본뜬 원반을 끌고 가는 형태로 말의 강한 힘을 보여준다. 현재 덴마크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글항아리 제공
고도로 산업화한 사회에서 말은 권위를 상징한다. 북미, 유럽 국가에서 기마경찰은 말에 올라 시위 현장을 통제한다. 의전행사에서 전통과 품격을 높이는 일을 맡는다. 제복을 입은 채 말에 오른 이들은 말에 오르지 않은 이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권위를 뿜어낸다.

말은 속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고대부터 유목사회에서 말은 빠른 이동, 운송을 위한 제1의 수단이었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말의 모습은 속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경마, 폴로 경기다. 최고의 속도전으로 꼽히는 F1 레이싱에서도 사람들은 늘 엔진의 마력(馬力)을 조금이라도 높이려 안달이 나 있다.

인류가 이토록 6000년 넘게 마력(馬力)의 마력(魔力)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미국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인간이 사육한 최상의 동물인 말이 인류 문명에 번영을 가져다줬기 때문이라고 봤다. 고대부터 말은 정복의 수단이자 문명, 종교, 언어 전파의 수단이었다. 말의 기동성을 이용해 인간은 물리적 이동거리를 단축했고, 말이 짊어진 물품들은 더 빠르게 세계로 퍼져나갔다. 말을 이용할 줄 알았던 문명은 말을 이용하지 못한 문명을 압도했다. 고도로 발전한 기술을 말에 싣고 널리 펼쳐내지 못한 문명은 사라져갔다.

기원전 6000만 년 전부터 존재한 야생말의 생물학적 분석부터 인류와 함께한 말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풀어낸다. 문화인류학과 역사를 매력적으로 연결하고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인간과 말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에서 인류의 미래 모습까지도 조심스레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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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중심으로 서술된 기존 역사를 말을 중심에 놓고 바라보니 상당히 흥미롭다.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건도 ‘말 때문에 이긴 전쟁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기마민족의 활약으로 유명한 몽골제국은 물론이고 고대 아케메네스 제국과 중국 진 제국은 말을 효과적으로 흡수한 ‘기마 군국주의’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뒤이어 전차를 이용한 로마, 아랍의 기마병, 신대륙을 정복한 유럽 기마병까지 말은 늘 인류에게 정복과 승리를 가져다줬다. 20세기에는 ‘쇠 말’(기관차), ‘말 없는 탈것’(자동차), ‘날개 돋친 페가수스’(비행기)가 말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말의 활약상에 주목하면서도 말 때문에 초래된 파괴적 정복전쟁의 폐해도 짚었다. 특히 유럽인이 신대륙 정복에 앞세운 군마는 아메리카 원주민 4830만여 명의 피를 불러왔다. 이는 끝내 19, 20세기의 노예무역과 1·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이에 저자는 끊임없는 가속에 대한 열망 대신 공유, 협력이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속도를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쟁이 줄어들지 않고 계속되는 지금이야말로 멈추지 않는 정복의 오만한 태도에서 벗어나 인종 말살의 대립, 고갈되는 오존층, 녹아가는 만년설, 사라지는 산호초로 고통받는 이 세상을 다시 일으켜야 할 때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말의 세계사#피타 켈레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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