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의 미술시간]〈45〉중국의 상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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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샤오강 ‘대가족’, 1995년.
장샤오강 ‘대가족’, 1995년.
유교문화권에서 혈연은 그 어떤 관계보다 중요하다. 혈연은 오랫동안 민족 통합이나 국가를 지탱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했지만 혈연사회의 부작용도 크다. ‘혈연: 대가족’ 연작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중국 작가 장샤오강(張曉剛)은 “중국은 하나의 가족 같으며, 대가족”이라고 말한다.

이 그림은 그가 고향 부모님 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문화대혁명 시기의 가족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주도한 문화혁명은 기존의 모든 전통과 가치를 뿌리째 흔들었고, 마오의 친위대였던 학생 홍위병들은 아버지뻘인 공산당 간부, 지식인, 교사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데 앞장섰다. 혁명은 수백만 명의 숙청과 억울한 희생을 낳은 후에야 끝이 났고, 그 상처는 결국 중국인 모두에게 남았다.

흑백사진 톤의 커다란 화면 속엔 표정도 개성도 상실한 세 남매가 등장한다. 거의 동일해 보이는 얼굴 표정과 자세, 비슷한 옷차림과 머리 모양은 마오 시기의 표준화되고 획일화된 전체주의 산물을 대변한다. 단발머리 첫째는 마오가 즐겨 입던 중산복을 입었고, 가운데 붉은 타이를 맨 둘째는 머리 전체가 빨개서 학생 홍위병을 연상시킨다. 이들의 왼쪽 뺨에는 누군가에게 맞은 듯한 누런색 자국이 있는데, 이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의미한다. 감정도, 상처도, 말도, 모두 속으로 삼켜버린 듯한 삼남매는 가늘고 붉은 선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 그들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힘인 혈연을 상징하는 것일 테다.

1958년생인 장샤오강은 문화혁명부터 톈안먼(天安門) 사태까지 중국 현대사의 소용돌이를 직접 겪은 세대다. 문화혁명 초기 당 관료였던 그의 부모도 해직돼 어린 자식들과 떨어져 3년간 시골에서 재교육을 받았다. 그의 나이 겨우 여덟 살 때였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중국인이 느꼈을 불안감과 복잡한 심리를 화폭에 담아 전한다. 특정 가족의 초상처럼 보이지만 실은 혼돈과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인위적 대가족, 중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문화대혁명#장샤오강#혈연#대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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