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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곳곳서 툭하면 “국민투표하자”… 민주주의 꽃인가, 혼란의 늪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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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곳곳서 툭하면 “국민투표하자”… 민주주의 꽃인가, 혼란의 늪인가

동정민 특파원 , 임보미 기자 입력 2019-02-02 03:00수정 2019-02-0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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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국민투표 포퓰리즘 시대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광장에서 ‘노란 조끼’ 시위대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노란 조끼’ 시위대는 온라인 청원으로 70만 명 이상의 서명을 얻으면 국민투표를 실시하도록 헌법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파리=AP 뉴시스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과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를 주창하는 신생 정당의 약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기류를 타고 각국에서 국민투표 실시 요구가 봇물 터지듯 분출되고 있다. “의회를 거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바를 직접 이루겠다”는 주장이다.

국민투표는 분명 직접 민주주의의 ‘꽃’이다. 다만 이 ‘꽃’은 소기의 목적과 달리 종종 국가 분열 및 사회 혼란을 낳고 있다. 국민투표 열풍의 시발점인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논란이 대표적. 2016년 6월 브렉시트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한 영국은 2년 8개월째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현대 시민사회의 근간인 대의(代議) 민주주의도 그렇게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 佛 노란 조끼 ‘손쉬운 국민투표’ 요구


현재 국민투표 논란으로 가장 시끄러운 나라는 프랑스. 지난해 11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안을 반대하며 등장한 ‘노란 조끼’ 시위대가 시민주도형 국민투표제(RIC)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노란 조끼’는 당초 원했던 유류세 및 전기·가스요금 인상안 철회를 얻어냈고 최저임금 인상이란 보너스까지 얻었음에도 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RIC의 핵심은 ‘온라인 청원으로 70만 명 이상의 서명을 얻으면 국민투표를 실시하도록 헌법을 바꾸자’는 것이다. 프랑스 헌법은 등록 유권자의 10분의 1 이상(약 470만 명) 서명 혹은 전체 의원 5분의 1 이상의 동의가 있을 때 국민투표가 가능하다. 이 요건을 대폭 낮추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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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의 대상 범위는 더 파격적이다. 단순히 법안의 수정 및 폐지가 아니라 대통령, 장관, 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의 해임도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마크롱 정부는 RIC에 부정적이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최근 “RIC를 도입하면 어떤 정부가 등장해도 RIC의 요구 사항을 해결하는 데 모든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반면 ‘노란 조끼’는 “RIC는 선출직 공무원이 내건 약속을 지키게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이를 통해 공무원 부패와 국고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 기성 정치 불신+IT 발전


‘노란 조끼’의 RIC 요구 배경에는 선출직 공무원과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렸다. 이들은 “4, 5년마다 한 번씩 선거로 권력을 위임한 행정부, 행정부를 감시하라고 둔 국회 모두 일반 국민의 삶과 너무 먼 곳에 있다”며 “합법적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달라”고 외친다.

이들은 노조 또한 사실상 기성 정치에 물들어 밑바닥 민심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노란 조끼’가 프랑스의 어떤 특정 정당 및 노조와도 철저히 분리된 채 석 달째 시위를 이어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보기술(IT)의 급격한 발전과 소셜미디어의 활성화로 누구나 빠르고 쉽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도 국민투표 요구 확대를 부추기고 있다. ‘노란 조끼’ 시위 역시 지난해 한 시민이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유류세 인상을 비판하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이 늘면서 시작됐다. ‘노란 조끼’ 측은 “누구나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서명만으로도 국민의 뜻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투표의 정당성은 문제없다”고 주장한다.

○ 정권 연장 수단 삼으려다 둔 자충수

역설적으로 일부 기성 정치인의 움직임도 국민투표 열풍에 일조하고 있다. 겉으로는 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을 묻는 외양을 둘렀지만 실제로는 반대파를 제압하고 정권을 연장하려는 수단으로 국민투표를 활용하는 정치인이 적지 않았다. 이런 국민투표는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을 안고 있어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높다. 본인의 직을 내려놓아야 함은 물론이고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뜻이다.

2016년 12월 이탈리아 헌법 개정 국민투표 부결로 자리에서 물러난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청년실업 및 경기둔화 방지를 위한 구조조정 등을 추진하던 렌치 총리는 상원 간섭으로 속도가 나지 않자 “상·하원에 동등한 권한을 부여한 현행 헌법을 개정하겠다”며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의 목적과 달리 이탈리아 국민은 이를 렌치 내각의 중간평가로 받아들였다. 30%대 후반의 높은 청년 실업률, 더딘 경제 회복, 중동 난민 유입에 대한 불만이 높은 점을 고려하지 않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부결이 확실시되자 그는 국민투표 최종 결과가 나오기도 전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도 2015년 총선 승리를 위해 브렉시트 카드를 들고나왔다. 그는 그 전년도에도 스코틀랜드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라는 비슷한 전략을 구사했다. ‘부결 가능성이 높지만 독립 요구 목소리가 워낙 거세니 일단 들어주는 척하면서 생색을 내자’는 속내였다.

캐머런 총리의 보수당 지지층은 대부분 대영제국의 영광을 기억하는 장·노년층, 연금생활자들이다. 소위 ‘집토끼’들이 EU 체제에 회의적이라는 점을 간파한 그는 총선 기간 브렉시트를 거론해 손쉽게 승리했다. 다만 이후 상황은 그의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EU 잔류와 반대’로 국론이 분열됐고 보수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설마 했던 브렉시트 국민투표까지 가결됐다. 캐머런도 총리직을 내려놔야 했다.

○ 단골 주제는 ‘에너지’


국민투표의 단골 주제는 원자력발전, 고속철 등 중후하고 장대한 사안과 동성결혼 및 낙태 허용 등 사적(私的)인 주제로 나뉜다. 이 중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문제는 국민투표의 단골 주제. ‘효율’과 ‘환경’이란 가치가 팽팽히 대립하고, 한번 정책 방향을 잡으면 수정하거나 바꾸는 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며, 후손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많은 나라가 원전을 주제로 국민투표를 종종 실시한다. 다만 투표 후에도 사회적 혼란이 쉽게 가라앉진 않는다. 1984년 탈원전 공론화를 시작한 스위스는 무려 33년간 다섯 차례의 국민투표를 거쳐 2017년 5월에야 원자로 5기를 폐쇄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폐기 시기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아 아직도 이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도 지난해 12월 ‘원전 비중을 전체 전력의 50%로 줄이는 안을 당초 목표였던 2025년에서 10년 뒤로 미루자’는 안을 발표했다. 그 뒤부터 찬반 양론이 극심하다.

한국과 대만도 내홍을 겪고 있다. 국내 학계 및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본부’는 공론화 및 국민투표 실시를 목표로 지난달 30일 기준 38만7714명의 서명을 얻었다. 하지만 풍력 등 천연에너지에 의존하기 어려운 한국의 지형 구조, 비용 상승, 수출 경쟁력 저하 등을 우려하는 반대 목소리가 매우 높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2016년 대선 당시 “2025년까지 원전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지난해 여름 18년 만에 발생한 대정전(블랙아웃) 여파로 탈원전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지난해 11월 ‘원전 가동 중단 법안 폐지’ 등 10개 사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국민투표에서 원전 중단 법안을 폐지하자는 결정이 가결됐지만 집권당 민진당 지지자 중 일부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 브렉시트를 더 어렵게 만드는 아일랜드 국민투표

사적인 주제의 국민투표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기도 한다. 아일랜드는 지난해 5월 국민투표로 낙태 금지법을 폐지했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의 탈보수화 바람이 브렉시트의 최대 화약고인 북아일랜드 ‘백스톱’(영국령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 아일랜드 간의 통행 및 통관 자유를 보장하는 안전장치) 조항과 맞물려 북아일랜드 내 긴장을 높이고 있다.

아일랜드 최초의 동성애자 총리이자 낙태 금지 폐지를 주도한 리오 버라드커 총리는 올해 5월 현재 약 4년이 걸리는 이혼을 쉽게 하는 국민투표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북아일랜드 내 영국 잔류파 개신교도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국 여당 보수당의 연정 파트너이기도 한 북아일랜드민주연합당(DUP)은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의 모임이다. DUP 소속 의원들은 낙태, 동성결혼, 이혼, 성소수자 권리를 반대하고, 사형제를 찬성하며 영국 잔류를 희망한다. 이들은 아일랜드의 낙태 금지 및 손쉬운 이혼 바람이 북아일랜드 내 가톨릭 주민들의 반(反)DUP 정서를 강화하고, 무엇보다 북아일랜드의 영국 독립 움직임을 부추길까 우려하고 있다.

국민투표 언제 어디서 처음 시작됐나

‘종주국’ 스위스 1294년 첫 실시, 1847년 법제화… 지금도 年평균 9개 안건 처리

국민투표는 언제 시작됐을까. 민주주의가 정착된 근현대일 것이란 선입견과 달리 무려 725년 전인 1294년이 처음이다. 서구 역사학자들은 당시 스위스 중부 슈비츠 주민들이 주요 사안을 거수로 결정한 사례를 국민투표의 시초로 본다.

1847년 헌법으로 국민투표를 법제화한 스위스는 명실상부한 국민투표 종주국. 어떤 사안이든 18개월 안에 10만 명의 서명만 모으면 국민투표가 가능하다. 최근 20년간 매년 평균 9개 안건을 국민투표로 결정했다.

국민투표가 세계 역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기도 했다. 1934년 나치 독일은 대통령과 총리직을 합치는 ‘총통직 신설’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찬성 88.1%로 아돌프 히틀러가 총통이 됐다. 기세등등한 히틀러는 4년 뒤 오스트리아를 독일에 합병하는 ‘안슐루스(Anschluss)’ 때도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이어지는 바람에 원래 ‘통합’을 뜻하는 독일어 ‘안슐루스’가 1938년의 국민투표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바뀌었다.

공권력이 개입하면 사실상 ‘거수기’로 전락하곤 하는 국민투표의 부정적인 모습과도 무관하지 않다. 당시 뉴욕타임스(NYT)는 “히틀러가 국민투표로 칭기즈칸 이후 가장 강력한 권력자가 됐다”고 비판했다. 클레멘트 애틀리 전 영국 총리도 “국민투표가 나치즘과 파시즘의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물론 국민투표의 좋은 사례도 많다. 제국주의 통치를 경험한 많은 신생 국가들이 국민투표로 독립을 쟁취했다. 1958년 아프리카의 가봉,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마다가스카르, 콩고, 차드, 니제르 등은 프랑스에서 독립할 때 국민투표를 거쳤다. 소련 해체 후 독립한 발트해 3국(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우크라이나, 조지아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2006년 몬테네그로, 2011년 남수단 독립도 국민투표의 덕을 본 사례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임보미 기자 bom@donga.com
#국민투표#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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