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유관순상’ 시상식장에서 저와 충남지사 수행비서와 나눈 대화입니다. 동아일보와 충청남도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 상을 제정해 매년 여성운동에 공로가 많은 분께 상을 드리고 있습니다. 심사위원장은 충남지사가 맡기 때문에 시상도 충남지사가 해오고 있었습니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충남지사의 시상과 여성가족부 장관의 축사. 주인공인 수상자에게 가장 기념이 될 사진은 당연히 의전 1순위인 충남지사, 여가부 장관과 같이 찍는 것이죠. 보통은 시상식이 다 끝나고 촬영해 드립니다. 그런데 강은희 당시 장관이 개인 일정상 본인 축사 순서 직전에 오는데다 축사만 마치고는 바로 행사장을 나서야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황스러웠죠.
방법은 시상을 마친 안 전 지사와 수상자가 무대를 내려올 때, 축사를 하기 위해 나서는 장관과 스치는 순간에 찍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수행비서에게 ‘장관님이 축사를 하고 바로 퇴장한다고 하시니, 수상자를 위해 그 전에 잠깐 사진을 찍자고 말씀드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위의 대화 내용이 그것이죠(오해를 하실까봐… 제가 만난 수행비서관은 남성분이었습니다).
결국 염치불구하고 행사 도중 제가 안 전 지사에게 엉금엉금 기어가 상황을 알렸고, 안 전 지사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늦게 도착한 강 전 장관에게도 설명을 했고, 두 사람 모두 정치인답게 사진 촬영에 능숙했습니다. 덕분에 아래 사진을 찍었습니다.
왜 수행비서는 본인이 모시는 상사에게 얘기를 못 했을까요? 확정된 의전 순서를 이미 보고했는데, 그게 바뀌어서? 설령 의전이 정해졌다 해도 이 정도 의견도 따로 전달 못 하는 걸까요?
실제로 관공서 기업 기관들의 행사 취재를 위해 가보면, 의외로 사진촬영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황이 꽤 많이 봅니다. 특히 최고경영자 등이 있을 때 심한데요, 홍보 담당자들이 아예 진행을 못합니다. 유능한 홍보인들마저 갑자기 눈만 껌벅껌벅. 결국 포토라인에 선 사진기자들이 답답한 나머지 “포즈를 잡아달라, 이렇게 저렇게 해보세요”라고 나서고 맙니다.
사진홍보는 외부와 소통하려는 노력인데, 정작 내부 소통부터 막혀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됩니다.
2년 뒤인 2018년 초 충남지사실 여성비서관의 미투 고백 뉴스를 접하면서, 그 날 시상식장이 떠올랐습니다. ‘업무상 위력행사’에 의한 성폭행이라는 얘기가 많았죠. 비서관마저 한마디 말도 걸기 쉽지 않은 소통구조라면 저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최고수장이 절대적 도그마(dogma)로 군림한 건 아닐까 하고요. 그리고 그 도그마는 본인 스스로가 아니라 직원들이 만들어 준 건 아닐까요. 마땅히 해야 할 말도 안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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