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다녀갔지만…성수동 제화공장 폐업 ‘도미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30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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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브랜드 ‘미소페’를 생산하는 하청공장 슈메이저의 홍준기 대표가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자신의 공장을
 둘러보며 허탈해하고 있다. 홍 대표는 “이날 폐업 신고를 마쳤다”며 “지난해 급격한 제화공의 공임비 인상을 감당할 수 없어 
공장을 접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래 사진은 사무실 한 켠에 쌓여있는 미소페 구두. 염희진기자 salthj@donga.com
구두 브랜드 ‘미소페’를 생산하는 하청공장 슈메이저의 홍준기 대표가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자신의 공장을 둘러보며 허탈해하고 있다. 홍 대표는 “이날 폐업 신고를 마쳤다”며 “지난해 급격한 제화공의 공임비 인상을 감당할 수 없어 공장을 접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래 사진은 사무실 한 켠에 쌓여있는 미소페 구두. 염희진기자 salthj@donga.com
국내 수제화 생산의 주요 기지인 서울 성동구 성수동 제화거리에 있는 제조공장들이 최근 최저임금과 제화공의 공임비 상승 여파로 폐업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성수동 제화거리는 금강제화를 비롯한 주요 브랜드 본사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후 구두 제조공장과 가죽, 부자재공장이 밀집하며 형성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서울 구두류 제조업체 534개 가운데 70% 이상이 성수동 일대에 몰려있다. 하지만 최근 인건비 인상과 줄어든 일감을 감당하지 못한 제조공장 수십 곳이 1년 새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제화업계 관계자는 “2017년 400여 곳이던 제조공장이 1년 새 250여 곳으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구두 브랜드 ‘미소페’를 보유하고 있는 비경통상의 하청공장인 슈메이저도 지난해 12월 28일자로 폐업 처리됐다. 비경통상은 슈메이저를 비롯해 총 9곳의 하청공장을 이곳 성수동에 두고 있다. 폐업신고를 막 마친 이날 공장 사무실에서 만난 홍준기 대표(64)는 허탈한 표정이었다. 그는 40년 넘게 소위 말하는 ‘구둣밥’을 먹으며 구두 제조공장을 운영해왔다. 슈메이저를 설립한 2016년부터는 매일 200~300족의 미소페 구두를 생산해오고 있었다. 홍 대표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급격한 공임비 인상이 폐업의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제화 업계에 따르면 성수동 일대의 공임비 인상은 지난해 4월 서울 봉천동에 있는 제화 업체 ‘탠디’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제화공들이 ‘민주노총 제화지부’를 결성해 파업을 벌인 게 계기가 됐다. 민주노총 제화지부는 이후 성수동에서도 하청공장 제화기술자를 지부에 가입시키고 하청공장을 상대로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흔히 ‘객공’으로 불리는 제화공은 특수고용직의 일종인 소사장제로 고용돼있으며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한 제화업계 관계자는 “이 지역 제화공 가운데 민주노총에 가입한 사람이 2017년 20여 명에서 최근 700명까지 늘어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조공장 내 관리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의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제화공의 공임비를 올려달라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결국 성수동 일대 하청업체들은 지난해 5월 구두 윗부분을 제조하는 갑피와 굽을 제조하는 저부의 공임비를 각각 1500원씩 인상하기로 민주노총과 합의했다. 홍 대표는 “한 족당 1만2000원가량 하던 공임비가 10년 넘게 물가상승률 수준(5%)으로 오르다 지난해 25% 가량(한 족당 3000원 이상) 오르니 이에 대한 충격을 하청공장들이 흡수하지 못했다”며 “더 이상 공장을 운영해서 수익을 낼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제화공의 공임비 인상과 함께, 이들을 소사장이 아닌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며 제화공이 하청업체를 상대로 퇴직금을 청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특수형태근로자인 제화공의 법적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요구지만 이에 대한 제화공과 공장 근로자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갑피 기술자인 이종수 씨(62)는 “제화공은 오랜 기간 저임금 노동을 하며 권리의 사각지대에 있었다”며 “공임비 인상을 비롯해 4대 보험, 퇴직금 지급 등 제화공의 권리가 보호받는 조치들이 이제라도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한 하청공장 관리자는 “일부 제화공은 능력에 따라 월 400만~800만 원까지 받는다. 되레 하청공장 사장들이 인건비도 못 벌 정도로 열악하다”고 말했다. 저부 기술자인 최현진 씨(64)는 “저가 중국산이 쏟아지며 수제화 가격을 올리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공임비만 무리해서 올릴 수가 있느냐”며 “공임비 인상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그렇게 되면 공장을 운영할 사람이 사라진다는 걸 제화공이 알아야한다”고 말했다.

급격한 공임비 인상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영세산업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도 나오고 있다. 한 수제화 생산공장 운영자는 “생산공장들이 폐업으로 사라지면 ‘메이드인코리아’ 구두는 없어지고 국내 수제화 산업의 일자리도 줄어드는 것”이라고 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영세산업의 구조조정이 최저임금인상 인상이라는 인위적인 방식으로 의도치 않게 이뤄지다 보니 폐업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라며 “특수형태근로자인 제화공도 이들의 고용 형태를 고려한 맞춤식 지원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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