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초계기 논란’ 국제법적 쟁점과 한국의 대응 논리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30일 14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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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일본의 초계기 논란으로 인해 한일관계가 크게 경색되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를 대내외적으로 정치쟁점화하면서 스스로의 정당성의 근거로 국제법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어떤 국제법적 쟁점들이 있는지, 한국 입장에서 각각의 쟁점에 대응하는 논리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장성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16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A. 2018년 12월 20일 대한민국 해군이 북한 조난 선박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사격통제레이더 논란으로 한일 양국 간의 갈등이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당초 한국 해군은 동해상에서 북한 어선이 표류 중이라는 구조신호를 접수하여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3200t급)을 급파하였습니다. 일본 측은 이 과정에서 광개토대왕함의 사격통제레이더인 추적레이더(STIR 180)가 일본 초계기를 의도적으로 겨냥하면서 적대행위를 하였다고 거칠게 비난하였습니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24일 일본 방위상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레이더 조준이 무기사용에 준하는 행위로 간주되는 위험한 행위임을 지적하면서, 레이더를 맞은쪽에서 먼저 공격했더라도 국제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안이며 미군이라면 즉시 격침했을 것이라고까지 보도하기도 하였습니다.

반면 한국 합참은 지난해 12월 24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광개토대왕함이 3차원 레이더(MW08)로 광범위한 구역을 탐색하기는 했지만 추적레이더를 작동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국방부는 오히려 일본 초계기가 고도 150m, 거리 500m까지 접근해 저공 위협비행을 감행한 사실을 문제 삼으며, 우방국 항공기가 아니었다면 자위권적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강경하게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번 사건에서 국제법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 핵심쟁점은 실제 무력공격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함정으로부터 추적레이더가 겨냥되고 있다거나, 반대로 군용항공기가 군함 상공에 근접 비행하는 등의 위협을 가하는 경우 그에 대한 무력대응이 허용될 수 있는지, 이에 비추어볼 때 한일 양국의 행위를 각각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가 간에 아무리 사소한 적대행위가 이루어지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에 대응한 비례적 무력조치는 국제법상의 ‘부대급 자위권’(right of unit self-defence)에 근거하여 당연히 허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국의 교전규칙을 비롯한 군사매뉴얼에서는 일반적으로 ‘부대급 자위권’을 “부대지휘관이 적의 적대행위 또는 표출된 적대의도로부터 자기부대 또는 우군부대, 그 생명·신체와 재산을 방어하기 위하여 행사하는 자위권”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군사분계선 인근에서도 일단 사전 경고방송과 경고사격 등의 선행조치를 통해 적대의도가 확인되고 나면, 선행하는 적대행위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직접 조준사격과 같은 일정한 무력행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통상 교전규칙은 군사기밀에 속하므로 각국의 실행을 포괄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이 소규모 적대행위는 물론 임박한 공격에 대해서까지도 무력대응을 할 수 있도록 그 근거를 교전규칙에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NATO 교전규칙’과 ‘교전규칙에 관한 산레모 핸드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죠. 특히 산레모 핸드북은 미국은 물론 캐나다, 호주 및 영국군 구성원들이 그 입안과정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무력행사의 허용범위에 관한 각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표출된 적대의도’ 내지 ‘임박한 위협’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우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이는 적대행위의 급박성과 관련된 개념이므로, 결국 부대급 자위권 행사가 문제될 당시의 지배적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일체의 사실과 제반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지휘관이 직접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경우 부대 지휘관은 적대 행위 주체와 그 능력, 제반 작전상황, 그밖에 양국 간의 정치적 상황까지도 면밀히 고려할 필요가 있겠죠. 군사 실무적 차원에서는 양국 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상대국이 기뢰를 부설하는 경우, 수중 미식별 잠수함이 화력발사 위치로 기동하거나 어뢰 발사구를 개방하는 등 사격 준비를 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미사일 기지에서 통상 발사 전 단계에 해당한다고 간주되는 추적 전파를 송출하는 경우, 전투기가 레이더를 조준하거나 정찰기에 150m 이내로 접근하는 등의 경우 사실상 그 적대의도가 표출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24일 국방부가 공개한 일본 해상초계기의 근접 위협비행 모습.
24일 국방부가 공개한 일본 해상초계기의 근접 위협비행 모습.


결국 함정으로부터 추적레이더가 송출될 경우 군용항공기가 현장대응 차원에서 즉각 무력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일본 측 주장이나, 반대로 군용항공기가 군함 상공에서 저공 위협비행을 할 경우 무력대응이 가능하다는 한국 측 주장이 국제법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초계기에 추적레이더를 조사(照射)했는지,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에 대해 위협비행을 했는지가 주요 쟁점이 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처럼 애당초 우방국 간에 군사적 긴장상태가 고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레이더 송출이 (설령 추적레이더가 송출되었다 하더라도) 조난선박 구조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부대급 자위권 발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적대의도의 표출’이 존재한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일본이 공개한 동영상만 보더라도 초계기 조종사들은 한국 군함의 구조활동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레이더 경보음에도 불구하고 회피기동을 전혀 실시하지 않았던 것이 확인됩니다. 따라서 한국 측 입장에서는 실제로 추적레이더가 송출되지 않았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난선박 구조 과정에서 인근 비행체에 대한 적대의도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건 당시 한국 측 역시 일본 초계기에 대하여 부대급 자위권을 행사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다만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일본은 자국의 항공법 시행규칙과 국제민간항공협약을 인용하며, 당시 초계기 비행이 고도 150m 이상이었기 때문에 위협비행이 아니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법 질서 속에서 국내법은 규범이 아니라 단순 ‘사실’에 불과하므로 자국의 국내법 준수로 국제법 위반이 정당화되지 않으며, 국제민간항공협약은 제3조에 따라 민간항공기에만 적용되고 국가항공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같은 논리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특히 군용항공기는 민간항공기보다 그 위험성이 크다고 할 수 있으므로 타국 해상선박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국제민간항공협약에서 정한 150m 고도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비행 안전 준수의무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의 저공 위협비행이 경우에 따라서는 부대급 자위권을 발동시킬 수 있는 위험한 행위이며, 특히 그것이 ‘해상에서의 우발적 조우에 관한 규칙’(CUES)에 반하는 행위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동 규칙의 서명국들에게 이해와 지지를 구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동 규칙 2.8.1.(e)에서는 조우 함정 인근에서의 곡예비행과 모의공격 행위 자체를 회피하도록 권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규칙이 조약은 아니므로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지만, 정치적·도의적 차원에서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현 시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한일 간의 레이더 갈등이 실질적인 무력충돌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일본의 저공 위협비행에 한국이 자칫 무력으로 응수할 경우, 한국은 오히려 일본의 계산된 의도에 휘말려 국제사회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번 한일 레이더 갈등 자체는 양국이 주장하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만 확정되면 손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지난해에 이어 세 차례에 걸쳐 저공 위협비행을 추가 감행하였고, 1월 14일 실무협의에서도 실질적인 해결을 위한 합의를 사실상 거부하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일본 내 보수층을 결집시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을 상승시켰고, 앞으로도 한일 관계가 일본 국내정치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일 레이더 갈등이 순전히 우발적 사태에 불과하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같은 갈등은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그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징용판결 문제를 일단락 짓지 않는 이상 한일 양국 간에는 제2, 제3의 갈등이 거듭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정부가 과거사 문제와 한일 레이더 갈등 문제를 분리하여 접근하는 투트랙 전략을 유지하는 한, 한일관계의 근본적 개선책 마련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안준형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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