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예타’ 건너뛸 24조 사업, 끝까지 따져봐야 헛돈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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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앞으로 5년 동안 175조 원을 투입해 국가균형발전을 추진하겠다고 어제 밝혔다. 지난해 2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균형발전 비전’을 선포한 뒤 좀 더 구체화된 ‘균형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그 일환으로 전국 23개, 총예산 24조1000억 원어치의 사업을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한 채 추진하기로 했다. 총예산 500억 원, 국가 재정 30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에 대해 사업타당성을 따지도록 되어 있는 절차를 지역발전을 위해 생략하겠다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은 지난 수십 년간 역대 정부마다 추진했지만 수도권 집중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인구수가 적고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은 경제성을 중시하는 예타를 통과하기 어려워 낙후된 지역은 계속 낙후되는 악순환이 계속된 것도 사실이다. 경남 거제 창원, 전북 군산 등 주력 산업의 공동화(空洞化)로 위기에 처한 지역들은 불황을 이기는 데 이번 사업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광역단체별로 골고루 사업을 나눠준 ‘정치적 선심’에 대한 비판은 접어두더라도 이 사업들이 실제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느냐는 미지수다. 그동안 전국 각 지역에 수많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이뤄졌지만 지역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다. 예천공항 울진공항 등 전국 각지의 공항들과 평창올림픽 시설도 연간 수십억 원의 운영비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경제 전환기일수록 건물이나 하드웨어보다 인적 자원과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 여당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에 들인 26조∼27조 원을 4차 산업혁명 쪽으로 돌렸으면 기술개발이나 인력양성이 많이 돼서 산업 경쟁력이 높아졌을 것이라고 비판해왔다. 하지만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에 대한 종합계획이 부족한 것은 이 정부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산출물에 급급해 투자 적정성을 소홀히 판단한 채 세금을 쏟아붓는다면 훗날 엄한 비판을 받을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지역 발전의 마중물이 되려면 지자체 스스로 사람과 기업을 끌어들이려는 각고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철도나 도로만 놓인다고 허허벌판이 번화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지자체가 제안해 국가 재정이 들어간 사업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 나면 다른 재정 지원을 삭감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 검토해야 한다. 예타 면제보다는 예타를 더욱 신속하고 현실성 있게 수정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더 옳은 방향이다.
#예타#24조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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