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은퇴무대로 자리 잡은 아시안컵 “이게 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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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월 28일 0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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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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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주기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은 2004년 중국 대회 이후 다음 대회가 3년 후인 2007년에 열렸다. 1년이 앞당겨졌는데, 이는 올림픽 때문이었다. 개최 주기가 겹치다보니 아무래도 관심이 집중되는 올림픽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또 인기 높은 유럽축구선수권과도 주기가 같아 AFC의 고민이 깊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AFC가 내린 결정은 올림픽보다 한해 앞선 개최였다. 아시안컵이 2007년에 이어 2011~2015~2019년으로 이어진 배경이다. 달리 얘기하면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이 열린 다음 해에 아시안컵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월드컵이 끝나고 고작 6개월 만에 열리는 대회이다 보니 엔트리에 큰 변화를 주기 어렵다. 최고 기량을 갖춘 선수들의 평가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리가 없다.

물론 월드컵 이후 감독이 바뀌고, 또 그 감독이 자신의 뜻대로 새롭게 멤버를 구성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아시안컵이 감독 부임 이후 첫 시험대라는 점 때문에 성적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은퇴를 고민하는 베테랑들을 만류하면서 아시안컵까지 데려가는 이유이자 세대교체를 미루게 되는 요인이다.

2011년 카타르 대회를 통해 박지성과 이영표가 동시에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한국축구사에 큰 획을 그은 이들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은퇴를 시사했다. 하지만 여론이 가만 두지 않았다. 1960년 이후 우승이 없는 아시안컵을 다시 제패해 한국축구의 자존심을 살려야한다는 명분도 한몫했다. 2015년 호주 대회를 끝으로 차두리가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 강인한 체력과 투지, 그리고 뜨거운 열정은 마지막까지 강렬했다.

이처럼 어느 순간 아시안컵은 별들의 은퇴무대가 돼 버렸다. 이런 인식이 후배 선수들의 의식을 관통하면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수순처럼 굳어졌다.

2019년 UAE 대회에서는 지난 10년간 대표팀의 중원을 책임졌던 기성용과 구자철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들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이 끝난 뒤 은퇴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새로 지휘봉을 잡은 파울루 벤투 감독의 강력한 요청으로 아시안컵까지 이어졌다. 구자철은 카타르와 8강전에서 패한 뒤 공식적으로 은퇴를 밝혔다. 그는 “이번이 대표팀 생활의 마지막”이라고 못을 박았다. 기성용은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부상으로 소속팀에 복귀한 뒤 개인 SNS를 통해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침내 모두 끝났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겨 은퇴를 암시했다.

은퇴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향후 진로와 연결되기 때문에 선수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존중되어야한다.

하지만 선수가 아니라 대표팀의 입장은 조금 달라야한다. 은퇴무대를 갖는 선수와 처음으로 국제무대를 경험하는 선수 중 어느 쪽의 동기부여가 더 강할까. 기존의 베테랑과 세대교체를 통해 투입된 신예 중 어느 쪽이 더 강한 의욕을 보일까. 어떤 선수를 선발하면 선의의 경쟁에 불을 지필 수 있을까. 이런 다양한 문제들을 고민한 뒤 선수단을 꾸려야하는 게 대표팀이 할 일이다.

이번 아시안컵을 보면서 세대교체를 억지로 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굳이 막아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변화를 통한 내부 경쟁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결정이 쉽지 않다는 것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최고의 선수들과 아름다운 이별을 꿈꿨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게 우선 아쉽고, 또 그들을 억지로 잡아두면서까지 희생시킨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강조하고 싶은 건 아시안컵은 월드컵을 향한 출발선이 되어야한다는 점이다. 드러난 문제점을 철저히 따지는 게 우선이다. 그걸 발판으로 9월부터 시작되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 지역예선에 대비해 나가야한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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