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운전 시한폭탄’ 화물차 위험질주…졸음쉼터 무용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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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월 27일 07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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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진출입로 짧아 위험천만…사용자 거의 없어
전용 휴게소 21곳뿐…접근성도 떨어져 이용률 저조

지난 9일 오후 9시35분께 강원 원주시 호저면 광격리 중앙고속도로 춘천방향 330.8㎞ 부근에서 4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박모씨(55)가 숨지는 등 5명이 경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 중이다. 경찰은 “스키드 마크도 없었고 음주 등 특별한 사고 요인은 없었지만 졸음운전이나 전방주시 태만으로 발생한 사고로 추정하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 중이다.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지난 9일 오후 9시35분께 강원 원주시 호저면 광격리 중앙고속도로 춘천방향 330.8㎞ 부근에서 4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박모씨(55)가 숨지는 등 5명이 경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 중이다. 경찰은 “스키드 마크도 없었고 음주 등 특별한 사고 요인은 없었지만 졸음운전이나 전방주시 태만으로 발생한 사고로 추정하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 중이다.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지난해 9월13일 오후 경남 함안군 부근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3중 추돌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원인은 25톤 트레일러 운전사 A씨(50)의 졸음운전으로 밝혀졌고, 트레일러와 앞서 가던 관광버스 사이에 끼인 승용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다. 벌초를 마치고 이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던 승용차 운전자 B씨(48)와 그의 아들(10)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A씨는 “눈을 떠보니 바로 앞에 버스가 있었고, 깜빡 졸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물 운전 15년 경력의 A씨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5월21일 오후 10시50분께 경부고속도로에서는 졸음운전을 하고 있던 운전자 D씨의 12톤 화물차가 갓길에 세워져 있던 한국도로공사 순찰차를 들이받았다. 순찰차 근처에서 통화하고 있던 순찰대원 한 명이 숨졌고, 차 안에 타고 있던 다른 한 명도 부상을 당했다.

◇승용차 대비 치사율 2배…깜빡 졸다간 ‘죽음의 질주’

대형 화물차 운전사들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피해가 해마다 적지 않게 발생하면서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고속도로 위 시한폭탄’이라는 오명마저 쓰고 있다. 화물차 운전사들의 안전 의식도 문제지만, 이들의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한 제대로 된 도로 위 휴식 공간과 업무 환경 등 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7일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13~2017년 고속도로에서 화물차 운전자 과실로 발생한 사고는 모두 4379건으로 사망자가 539명(치사율 12.3%)에 이른다. 이 가운데 졸음운전은 1074건에 사망자 213명으로 치사율이 19.8%로 더욱 높다. 같은 기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전체 사고의 치사율(10.4%)에 비하면 2배 가깝다.

화물차 운전자들의 업무 환경은 시외·고속버스보다 더욱 열약한 것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졸음운전에 더욱 취약하다는 얘기다. 정해진 시간 내에 각종 화물을 전달해야 하는 화물차 입장에선 시간은 곧 생명과도 같기 때문에 선뜻 잠을 청하기도 쉽지 않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화물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수면시간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70%에 달했다. 운전자 5명 중 1명은 수면 무호흡증을 겪는 등 수면의 질도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졸음쉼터 진입·진출 사고 위험…일반 휴게소가 오히려 편해”

호남지선 북대전 졸음쉼터 전경. 국토교통부 제공
호남지선 북대전 졸음쉼터 전경. 국토교통부 제공
전국의 화물자동차 등록 대수는 45만대에 달한다. 화물차 운전사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은 졸음쉼터, 휴게소 등이 있지만 대부분 운전자 편의 측면에서는 거리가 멀다. 한국소비자원이 전국 졸음쉼터 45곳의 안전실태를 조사한 결과 35곳(77.8%)은 진입로 길이, 42곳(93.3%)은 진출로 길이가 ‘고속국도 졸음쉼터 설치·관리지침’ 기준보다 짧은 것으로 드러났다. 좁은 주차 공간에 진입마저 쉽지 않아 졸음쉼터를 택하는 화물차 운전자는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3년째 트레일러 운전을 하고 있는 최모씨(39·남)는 “(졸음쉼터에서) 고속도로로 빠져나갈 때 속도가 나지 않아서 뒤에서 달려오는 차량과 접촉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며 “졸음쉼터 대신 인근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라고 했다. 다른 운전자 황기찬씨(41·남)도 “실제 도로 진입로가 짧고 급커브인 경우가 많다”며 “주차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졸음쉼터에 들어가기가 꺼려진다”고 토로했다.

물론 화물차 운전자를 위한 ‘전용’ 휴게소도 있다. 여기엔 수면실, 샤워실 등이 구비돼 있는 운전자들을 위한 휴식공간에 가깝다. 하지만 전국에 21곳에 불과한 만큼 접근성이 좋지 않다. 경부고속도로 입장휴게소(서울방향) 대형 화물차 150대가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지만, 빈자리가 여전하다고 했다.

7년째 화물차 운전을 하고 있는 정모씨(42·남)는 “(전용 휴게소는) 주로 밤에 이용하는 편인데, 굳이 전용휴게소를 이용하겠다고 찾아가는 기사는 없을 것”이라며 “샤워실도 있지만 샤워까지 할 만큼 여유로운 운전자는 더욱 없다”고 전했다.

◇운전자 휴게공간 10개소 늘려…접근성 확보 차원

정부는 화물차 운전기사 전용 휴게 공간을 올해 10곳 가까이 늘려 접근성을 높이기로 했다. 화물차 운전자 편의시설인 일명 ‘화물차라운지’는 일반휴게소 내에 별도로 건설된 전용 시설이다.

화물차 운전자들은 ‘ex 화물차라운지’ 내에서 방범용 주차장 CCTV를 통해 화물차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국토부는 화물차 운전자 38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화물차 운전자에게 필요한 휴게 기능의 표준 모델도 만들었다. 백승근 국토부 도로국장은 “‘화물차라운지’ 운영을 통해 화물차 운전자들의 휴식여건이 개선돼 교통사고 예방에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신설 휴게소는 일정 기준 이상의 화물차 주차면수를 보유할 경우 ‘화물차라운지’를 필수 설치하도록 설계 기준을 만들었다”며 “앞으로도 화물차 운전자를 위한 편의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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