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의 갯마을 탐구]〈20〉물고기에게 표정이 있었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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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미국에서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가 흥행하자 아이들이 물고기를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는 사건이 여럿 발생했다. 영화를 본 아이들이 물고기에게 자유를 주려다가 벌어진 일이다. 영화에서 아기 물고기 니모가 사람에게 납치되자 말린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말린은 바다거북 크러쉬 일행의 도움으로 호주 시드니항에 도착하고 니모는 우여곡절 끝에 변기로 탈출해 아빠와 재회한다. 영화 속 물고기는 사람처럼 감정과 가족애, 표정, 목소리를 가졌다. 변기를 통해 물고기를 탈출시키는 바람에 배관공들이 바빠진, 다소 황당한 사건은 물고기에게 아이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놓아준 물고기들은 바람과는 달리 바다가 아니라 정화조로 갔을 테지만.

요즘 물고기를 놀잇감으로 삼는 축제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 지역에 서식하지 않는 물고기를 대량으로 풀어놓는 반(反)생태적인 축제라는 것이다. 물고기 맨손잡기 프로그램도 살아있는 생명체를 물건 취급하는 비(非)인도적, 비교육적인 행위라고 비판받는다. 물고기의 ‘집단 학살장’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물고기를 극심한 고통 속에 죽이는 것을 보고 즐기는 행위는 동물학대라는 것이다.

반면 먹기 위해 양식한 물고기를 풀어놓고 즐기는 축제를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양식 사료용 혹은 통발이나 낚시 미끼로 사용하는 물고기는 불쌍하지 않고 유독 축제장의 물고기만 불쌍한 것이냐는 반론이다.

내 눈으로 본 생명체에 연민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전국시대 제선왕이 소를 끌고 가는 사람을 보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제물로 바치기 위해 간다고 하자 제선왕은 소를 놓아주고 양으로 바꿀 것을 명했다. 사람들은 소나 양이나 뭐가 다르냐며 비웃었다. 이에 맹자는 “왕이 한 일이 인(仁)의 실천이다. 소는 보았으나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우선적으로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물고기는 개성을 가지고 관계를 형성하는 개체라고 한다. 단순히 살아있는 게 아니라 생활을 영위하는 존재다. 계획과 학습, 인식과 책략을 꾸미기도 하며 쾌락, 공포, 통증을 느끼고 장난을 치며 즐거워한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의 저자 조너선 밸컴은 도덕공동체의 구성원에게 필요한 자질은 지능이 아니라 지각력이라고 했다. 윤리학의 토대는 감정을 느끼고 통증을 인식하고 기쁨을 경험하는 지각력인데 우리는 물고기를 어엿한 개체로 취급해 왔는가 물음을 던진다.

영화처럼 물고기에게 표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개와 고양이의 반열은 아니더라도 감정을 표현하는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아서 죽게 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얼굴 근육을 움직여서 아파하거나 기뻐하는 표정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물고기의 잘못이겠는가. 영화에서 호기심 많은 니모, 건망증이 심한 도리, 채식주의자 상어 브루스 등 개성 넘치는 물고기들처럼 실제 물고기도 고통, 기쁨, 유대감, 지능을 가진 생명체다. 살아있는 것을 존중하며 축제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재미를 위해 고통스럽게 죽이지 말자는 시대적 요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심장이 뛰는 생명체를 함부로 하지 않는 사회는 아름답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니모를 찾아서#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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