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용 보내준 벤투, 축구가 가장 중요한 건 아니니까

  • 뉴시스
  • 입력 2019년 1월 22일 0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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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가 한창인 시기에 베테랑 공격수 이청용(보훔)이 한국으로 떠났다. 만 하루가 지나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에 출전 중인 이청용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은 18일 밤(현지시간)이었다.

익히 알려졌듯 때 아닌 이청용의 한국행은 여동생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서였다. 경험 많은 이청용이 대회 기간 자리를 비우는 게 어렵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오빠로서 여동생의 결혼식을 놓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이청용은 고심 끝에 파울루 벤투 감독을 찾아갔다.

사연을 접한 벤투 감독은 논의 끝에 이청용의 한국행을 허락했고, 덕분에 이청용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당시 대표팀 관계자는 “16강전까지 일정이 남아 있어 경기력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벤투 감독의 판단을 따랐다. 선수와 감독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결정은 관계자들은 물론 선수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수비수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은 “예전에는 본 적 없는 일이다. (한국이) 가까운 거리도 아니라 놀라기는 했다”고 했다.

이로부터 사흘이 지난 21일 두바이 막툼 빈 라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바레인전 공식 기자회견에서 벤투 감독에게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 사안에 대해 “간단한 문제”라고 표현했다. “축구가 생활의 일부이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것이다.

이청용은 한국을 오가며 왕복 20시간에 이르는 비행을 했다. 아무리 잘 쉬었더라도 꾸준히 UAE에 머무르던 선수들에 비해 컨디션 조절이 힘들 수밖에 없다. 감독이 붙잡았어도 선수 입장에서는 딱히 할 말 없는 상황이었다. 벤투 감독의 파격적인 결정은 한국 축구사에서 새 발자취를 남겼다. 벤투 감독 전에도 만사를 제쳐둔 채 축구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개인 사정을 들어 빠지겠다고 말할 분위기 또한 아니었다.

축구와의 인연은 언제든 끝날 수 있지만, 가족은 살아가는 동안 평생 함께 해야 할 존재다. 벤투 감독은 축구 지도자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 사안에 접근했다. 덕분에 이청용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가올 토너먼트를 준비하고 있다. 벤투 감독을 향한 충성심이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이청용은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준 벤투 감독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어느 때보다 열심히 뛸 것이다.

극히 당연해 보이면서도 과감했던 벤투 감독의 선택은 선수와 팀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분위기다. 벤투 감독은 앞으로도 선수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겠다고 공표했다. ”선수들을 도와줄 수 있을 때 늘 도와줄 것“면서 일정이 맞고 사유가 타당하다면 언제든지 배려하겠다고 약속했다.

【두바이=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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