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지은희, 박세리 기록 넘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1월 21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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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지은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인 2010년 5월 17일 미국 알라바마주 매그놀리아 그로브 골프장에선 ‘골프 여왕’의 마지막 대관식이 성대하게 거행됐다. 연장 접전 끝에 확정된 박세리의 미국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25번째 우승. 당시 32세 7개월 18일이던 베테랑 박세리는 벨 마이크로 LPGA 클래식에서 무려 2년 10개월 만에 우승을 맛보며 감격에 젖었다.

그러나 이 트로피가 박세리의 마지막 전리품이 될지는 당시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박세리는 이후 미국 무대 정상에 오르지 못한 채 2016년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다만 자신이 직접 세운 최고령 한국인 우승 기록만이 골프 여왕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9년간 필드 아래서 숨쉬고 있던 이 역사적인 기록이 마침내 깨졌다. 주인공은 박세리의 뒤를 이어 태극낭자 군단을 이끌고 있는 ‘맏언니’ 지은희(33·한화큐셀)다. 지은희는 21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포시즌 골프&스포츠클럽(파71·6645야드)에서 끝난 다이아몬드리조트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총상금 130만달러·약 14억원) 최종라운드에서 합계 14언더파 270타를 기록하고 경쟁자들을 모두 제쳤다. 이번 정상 등극으로 대선배 박세리가 지니고 있던 LPGA 투어 한국인 최고령 우승을 32세 8개월 7일로 갈아 치우며 새로운 발자취를 남기게 됐다.

지은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지은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완벽한 부활

지은희가 LPGA 투어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때는 2008년과 2009년이었다. 미국 진출 이듬해인 2008년 지은희는 웨그맨스 LPGA에서 첫 번째 우승을 맛본 뒤 2009년 굴지의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다시 정상을 밟으면서 떠오르는 샛별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지은희는 이후 기나긴 슬럼프에 빠졌다. 무려 8년간 정상에 오르지 못할 만큼 침체기가 길었다. 이유는 스스로에게 있었다. US오픈 우승 이후 백스윙과 다운스윙을 무작정 고치려다가 리듬을 잃으면서 감각 전체가 무너져버렸다.

낙담하던 지은희에게 반전의 계기가 찾아왔다. 2017시즌을 앞둔 시점에서 “4년간 호흡을 맞춘 호주 출신 캐디와 스윙을 고쳐보라”는 한화큐셀 김상균(49) 감독의 조언이 변곡점이 됐다. 유명 지도자의 레슨도 통하지 않던 지은희는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캐디와 겨우내 합심해 스윙을 간결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해 스윙잉 스커츠 LPGA 대만 챔피언십과 지난해 기아 클래식을 연달아 제패하며 부활의 날갯짓을 활짝 폈다.

자신감을 되찾은 지은희는 거칠 것이 없었다. 최근 2년간 우승자들이 대거 출동한 2019년 개막전인 다이아몬드 리조트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선 나흘 내내 최상위권을 달리며 우승을 정조준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버디 5개와 보기 4개를 엮어 1언더파 70타를 기록하고 LPGA 투어 통산 5승째를 이뤄냈다. 후배 이미림과 같은 후원사 소속의 넬리 코다가 지은희를 추격했지만 베테랑은 마지막 18번 홀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지은희. 사진제공|PGA of America
지은희. 사진제공|PGA of America

● 산뜻한 출발

이날 우승은 태극낭자 맏언니가 쏘아올린 올 시즌 첫 축포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1986년생인 지은희는 현재 활동 중인 한국 선수들 가운데 대선배격으로 통한다. 1988년생 동갑내기인 박인비와 김인경, 이정은을 비롯해 1990년생 유소연, 1993년생 김세영, 1994년생 전인지 모두 지은희의 후배들이다.

동료들보다 다소 뒤쳐지는 신체조건(신장 163㎝·체중 55㎏)을 이겨낸 덕분에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지은희는 경기 후 우승 인터뷰에서 “2009년 US오픈 이후 한참 동안 우승이 없었다. 그동안 스윙을 많이 바꾸면서도 효과가 없었는데 2017년 대만에서 우승을 하면서 스윙이 간결하게 맞춰졌다”고 비결을 밝혔다.

이날 첫 1~2번 홀을 보기로 출발했던 지은희는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 1번 홀 티샷을 당겨쳤다. 이어 2번 홀에서도 보기를 기록하자 ‘정신을 차리고 플레이를 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던 점이 반전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15번 홀까지는 다른 선수들의 스코어를 알지 못했다. 그즈음 갤러리로 온 내 동생에게 스코어를 물어본 후에야 내가 선두인지를 알았다”며 “그때부터 더욱 집중해서 경기에 임했다”고 뒷이야기를 풀어놨다.

시즌 개막전에서 18만 달러(약 2억2000만원)의 우승상금을 챙긴 지은희는 올 시즌을 산뜻하게 출발했다. 동시에 태극낭자들 역시 맏언니의 활약을 앞세워 5년 연속 최다승 합작이라는 공통의 목표 달성에 탄력을 받게 됐다.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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