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타버린 꿈”…원주 중앙시장 화재에 청년상인 ‘한숨’

  • 뉴스1
  • 입력 2019년 1월 19일 09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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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금 모아 청년몰 창업 도전했지만…“빚만 남아”
발길 끊기고 붕괴위험까지…전통시장 떠나는 청년

“막막하죠. 이자며 월세며 계속 나가는데, 언제 다시 가게를 열 수 있을지….”

지난 2일 강원 원주시 중앙시장을 덮친 화마로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은 청년상인 심재경씨(27·여)는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2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청년몰’ 창업에 도전한 심씨는 중앙시장 2층 ‘나’동에 작은 네일아트 전문점을 차렸다. 은행 대출금으로도 부족해 부모님에게 손까지 벌려야 했지만 심씨는 ‘어릴 적 꿈’을 이룬 것이어서 희망에 차 있었다.

하지만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7년 4월 문을 연 심씨의 ‘네일하는 언니’ 가게는 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화재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대출이자나 월세는 다달이 빠져나간다”고 말한 심씨는 “가게를 옮길 곳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1>은 원주 중앙시장 대형화재로 ‘개점휴업’ 상태에 놓인 청년상인의 현재를 돌아봤다.

◇“대출금 모아 장만했는데”…2년도 안 돼 불탔다

19일 강원 원주시청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화재는 지난 2일 낮 12시20분 중앙시장 ‘나동’ 1층 신발가게에서 시작됐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 없이 1시간30분만에 불길이 잡혔지만, 점포 87곳 중 40곳이 불 탔다.

나동에 입점했던 청년몰 13곳도 화재를 피하지 못했다. 심씨는 “황급히 가게로 가보니 가게 외벽이 녹아내리고 전선도 새카맣게 타버렸다”며 “제품도 모두 그을려 쓸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청년몰은 전통시장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획된 청년정책이다. 청년몰 조성사업에 뛰어든 39세 이하 청년들은 정부나 시의 지원금을 받아 시장 빈 공간에 점포를 마련할 수 있다.

지원금이 나오긴 하지만 자기 부담이 배로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씨는 “인테리어 지원금 1000만원을 받았지만 은행대출과 부모님 도움을 받아 6000만원을 더 들여서야 가게를 장만했다”며 “아직 대출도 갚지 못했는데 가게가 사라져 어쩔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같은 ‘나동’ 2층에서 미술공방을 운영하던 민화작가 지덕희씨(43·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씨는 “1월에 전시회가 예정돼 있었는데 공방에 있던 작품 150점이 모두 훼손돼 폐기했다”며 “서로 말은 안하지만 재기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불은 ‘나동’에서 났지만 피해는 시장 4개동 전체가 입었다. 화재 이후 시장을 찾는 고객 발길이 뚝 끊겨서다.

중앙시장 ‘라동’에서 클레이(점토)숍을 운영한다는 백효선씨(36·여)는 “주요 고객이 어린이들이기 때문에 매출이 80~90%나 줄었다”며 “주말에는 평균 20~30명씩 가게를 방문했지만 지금은 1~2명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화재 이후 드러난 건물 노후화와 부실한 건축물 안전등급도 고객의 발길을 돌리는 원인이 됐다.

원주시청에 따르면 중앙시장 안전등급은 이미 13년 전 B~D등급을 받았다. 시청 관계자는 “2006년 진단 당시 시장 2층은 D등급, 1층은 B등급을 받았다”며 “화재 이후 다시 정밀안전진단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씨는 “붕괴위험이 있는데 나 같아도 시장에 아이를 데려오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고객 끊기고 붕괴 위험…청년 떠나지만 대책은 ‘0’

결국 원주시와 상인들이 나서서 “나동을 제외한 모든 점포가 정상영업을 하고 있다”며 홍보에 나섰지만, 좀처럼 상권이 되살아나지 않으면서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이상훈 중앙시장 청년상인회장(37)은 “화재 이후 손님이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어떻게든 다시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다른 시장은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주시도 주요 공공기관에 안내문을 보내거나 성금을 상인회에 전달하는 등 전통시장 안정화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상인을 위한 지원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데다 영업 재개 시점까지 불투명해지면서 일부 청년상인들이 시장을 떠나는 ‘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심씨는 “아직 생계지원비나 임시공간 설치 등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지금도 예약 문의가 오고 기존 손님들의 회원권 기간도 끝나지 않아 가게 이전을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씨도 “4월에 예정된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당장 작업할 공간이 필요하다”며 “아쉽지만 중앙시장을 떠나 다른 곳에 새 공방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청년상인들에 따르면 중앙시장 나동 상인들은 19일 첫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Δ상인대표 선발 Δ피해상인 지원대책 등을 논의했다.

한편 원주시는 “현재로서는 정밀안전진단 외에 다른 대책은 논의하지 않고 있다”며 “안전진단이 진행되는 3월8일까지 나동 출입을 전면 금지하고, 그 후에 출입 여부나 보수방법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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