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막말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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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예술가 듀오 ‘길버트&조지’전
결성 52년째 맞는 ‘G&G’… 기이한 형태 ‘수염’ 연작 5점 선봬
스스로 ‘살아있는 조각’ 주장
파시즘-인종차별적 언행으로 구설… 논란 발언 묻는 질문엔 “……”

영국 작가 듀오 길버트 앤드 조지의 길버트 프루슈(오른쪽)와 조지 패스모어. 리만머핀서울 제공
영국 작가 듀오 길버트 앤드 조지의 길버트 프루슈(오른쪽)와 조지 패스모어. 리만머핀서울 제공
현대미술은 어디까지 난해해지는 걸까. 100년 전 예술가가 사인한 변기는 걸작이 됐고, 통조림에 담은 예술가의 배설물도 엄청난 가격의 작품이 됐다. 그렇다면 독설과 막말도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자신들을 ‘살아있는 조각’이라고 주장하는 예술가들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율곡로 리만머핀 갤러리에서 10일부터 열리고 있다. 결성 52년째를 맞는 길버트 앤드 조지(G&G)다.

길버트 앤드 조지의 작품 ‘BEARDNEST‘. 산책 중 동네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조합해 만들었다. 리만머핀서울 제공
길버트 앤드 조지의 작품 ‘BEARDNEST‘. 산책 중 동네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조합해 만들었다. 리만머핀서울 제공
G&G는 이탈리아인 길버트 프루슈(75)와 영국인 조지 패스모어(77)가 결성했다. 이들은 수십 년간 영국 런던의 한 동네에 살며 그곳에서 마주친 이미지를 가공해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번 전시에는 갖가지 기이한 형태의 수염을 담은 ‘수염 그림’ 연작 5점을 선보인다. 최근 이들과 e메일 인터뷰를 했다. 수염을 소재로 선택한 이유를 묻자 “턱수염부터 아래쪽의 수염까지 모든 수염을 사랑한다”는 거침없는 답이 왔다.

작품 속에는 수염과 뱀, 철조망, 폐허 등 여러 이미지가 합성되어 있다. 매일 산책하는 두 사람은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모인 동네에 수염을 기른 사람이 많아진 걸 보고 새 작업의 영감을 얻었다. 종교적 이유로 수염을 기르는 무슬림, 유행을 따라가는 힙스터 등 수염 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길버트 앤드 조지의 작품 ‘VOTE BEARD‘. 산책 중 동네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조합해 만들었다. 리만머핀서울 제공
길버트 앤드 조지의 작품 ‘VOTE BEARD‘. 산책 중 동네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조합해 만들었다. 리만머핀서울 제공
이들이 스스로를 ‘살아있는 조각’이라 주장하는 건 작품뿐 아니라 사람도 살아있는 예술이라는 의미다. 현대미술의 거장 요제프 보이스도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고 했다. 예술의 창조적 힘을 모든 이의 삶과 사회에 활용해야 한다고 본 보이스는 누구나 강의를 듣는 대학을 세우기도 했다. G&G도 자신들의 모든 행동을 예술이라 말한다. 이들에게 ‘살아있는 조각’의 의미를 묻자 “우리는 매일 눈뜰 때 보편성을 고심한다. 그 보편성은 ‘죽음, 희망, 삶, 공포, 섹스, 돈, 종교, 개 같은(Shitty), 벌거벗은, 인간과 세상’이다”라고 했다.

한데 이들의 말과 행동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독설로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과거 인터뷰에서 “파시즘은 삶의 원동력(life-force)”이라고 해 충격을 줬다. 1987년에는 아시아인이 담긴 작품에 ‘파키(Paki·백인들이 파키스탄인을 경멸적으로 이르는 말)’라는 제목을 붙여 논란이 됐다. 최근에는 테이트 미술관이 작품을 걸어 주지 않는다며 ‘편협한 진보주의자’로 가득하다고 비난했다.

두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포착하기 위해 도덕적 측면을 제거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우리 작품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것이고 도덕적 측면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보편성이란 혹시 백인 중심 사회를 그리워하는 보수적 영국인에게만 통용되는 건 아닐까. 인종차별이나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위한 예술이 가능하냐고 물었지만 이 질문에는 답이 없었다.

3월 16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길버트&조지#g&g#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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