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의 여정, 사회 약자 향한 희망 메시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1월 18일 06시 57분


이춘백·오성윤(왼쪽부터) 감독은 동물프로그램에서 본 반려견의 비참한 모습을 잊지 못해 연출 작업에 나섰다. 사진제공|오돌또기
이춘백·오성윤(왼쪽부터) 감독은 동물프로그램에서 본 반려견의 비참한 모습을 잊지 못해 연출 작업에 나섰다. 사진제공|오돌또기
반려동물을 향한 관심이 급증하는 만큼 한쪽에선 버려지는 유기견도 늘어간다. 인간의 이기심이라고밖에 표현할 길 없는 이런 행태에 눈을 질끈 감고 싶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16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언더독’은 자유를 찾아 나선 유기견의 여정을 통해 약자를 향한 애정 어린 목소리를 보탠다.

7년의 시간을 쏟아 ‘언더독’을 완성한 오성윤, 이춘백 감독은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마당’)을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사(220만명)를 새로 쓴 인물들. 한국적인 정서로 완성한 애니메이션으로 경쟁력을 증명한 두 감독은 ‘언더독’으로 더 단단해진 실력을 드러낸다.

영화의 출발은 어느 일요일 아침에서 시작됐다. 우연히 ‘TV동물농장’을 보던 오성윤 감독의 시선에 한 쪽 눈이 뭉개진 시츄 견의 비참한 모습이 들어왔다. 문득 ‘버려진 강아지들은 어떻게 될까’ 걱정이 일었다. ‘언더독’의 시작이다.

애니메이션 ‘언더독’은 자유를 찾아 나선 유기견의 모험담이다. 사진제공|오돌또기
애니메이션 ‘언더독’은 자유를 찾아 나선 유기견의 모험담이다. 사진제공|오돌또기

개봉을 앞두고 만난 오성윤 감독은 “‘마당’은 베스트셀러 원작이지만 이번엔 오리지널 시나리오”라며 “‘마당’ 이후 한국 애니메이션 성공작이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면서 중압감이 컸다”고 돌이켰다.

그와 대학(서울대 서양학과) 1년 선후배 사이이자 25년간 함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이춘백 감독의 마음도 비슷하다. “완전한 우리의 영역과 역량을 드러내고 평가받는 자리”라며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도 크다”고 했다.

‘언더독’은 서울 인근 북한산에 버려진 유기견 뭉치가 같은 처지 유기견들과 만난 뒤 사람 손길 닿지 않는 곳을 향해 떠나는 모험을 그린다. 감독이 처음 가진 의문 그대로, 버려진 유기견이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을 더하고 희망을 보태 이야기를 풀어간다. 도경수 박소담 박철민 등 주인공 목소리를 맡은 배우들의 연기를 먼저 녹음한 뒤 작화를 입히는 등 방식으로 극영화 같은 효과도 준다.

애니메이션 영화 '언더독'의 한 장면. 사진제공|오돌또기
애니메이션 영화 '언더독'의 한 장면. 사진제공|오돌또기

시나리오를 쓴 오성윤 감독이 전체를 총괄하는 연출자였다면, 이춘백 감독은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할 아트워크를 책임졌다. 한국적인 색채에 집중한 아트워크로 완성도를 높인 몫은 이 감독이 거둔 성과다. “집안 식구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낸다”는 설명처럼 두 사람은 24시간의 대부분을 함께 지내면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에 대한 반응도 즉각적이다. 한국 작품으로는 처음 애니 강국인 일본이 3월 여는 도쿄애니어워드페스티벌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춘백 감독은 “사람의 손으로 그리는 일러스트를 선호하면서도 그 안에서 기법이나 질적인 변화를 시도해왔다”며 “디즈니와 픽사 같은 할리우드스튜디오와 차이가 있지만, 그런 차이가 우리만의 경쟁력”이라고 했다.

기술적인 묘사와 정서적인 구현도 그렇지만 ‘언더독’이 담은 사회 약자를 향한 애정과 희망의 메시지 역시 탁월하다. 이는 두 감독의 가치관이 반영된 지향이기도 하다.

“자기 주체성 안에서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이나 성장기에 관심이 많다. 그게 내 모습이기도 하다. 남보다 늦은 나이에 감독이 됐고, 늘 ‘늦게 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의심한다. 그런 질문이 작품에도 투영되지 않겠나.”(오성윤)

애니메이션 영화 ‘언더독‘의 한 장면. 사진제공|오돌또기
애니메이션 영화 ‘언더독‘의 한 장면. 사진제공|오돌또기

극적인 이야기이지만 ‘언더독’이 그린 세상은 허구가 아니다. 영화 개봉과 맞물려 마침 동물보호단체의 비인간적 실체가 드러나 충격을 던지면서 영화도 새삼 주목받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유기견, 개공장 등 이슈가 우리 가까이에서 암암리에 벌어져왔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섬뜩하다.

때마침 터진 이런 이슈에 두 감독도 시선을 거둘 수는 없다. 오성윤 감독은 “어떤 수단 자체가 목적이 돼 버리는 순간이 허다하다”며 “(케어 사태도)목적이 점차 의식화 되는 과정인 것처럼 보여 굉장히 안타깝다”고 씁쓸해 했다.

‘언더독’은 앞으로 70개국 관객과 만난다. 대만 등 동남아로 시작해 프랑스 등 유럽으로 이어진다. 두 감독은 “1000억원씩 들인 디즈니 애니와 비교할 순 없지만 우리만의 색을 가진 애니메이션이란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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