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착 재고 몸을 사내에게 내 맡기고…” 탱고를 담은 한국의 명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7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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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착 재고 몸을 사내에게 내 맡기고 선정적인 리듬 흐르는 대로 꿈을 꾸듯 스탭을 밟는 춤”.

소설가 유진오가 1938년 잡지 삼천리에 연재한 소설 ‘수난(受難)의 기록’에 묘사된 탱고의 모습입니다. 댄스홀 운영이 불법이던 일제강점기 경성의 한 댄스홀을 찾은 주인공의 눈에 비친 이 춤은 ‘독특한 에로틱한 포즈’ 그 자체였습니다. 집시풍의 러시아 민요 ‘검은 눈동자’를 배경으로 추는 이 춤에 대한 묘사가 사실상 한국에서의 탱고를 세밀하게 기록한 첫 자료나 다름없습니다.

1930년대 땅고라는 이름으로 경성의 댄스홀까지 점령한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빈민층사이에서 시작돼 유럽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왈츠와 함께 경쟁하며 사교계를 주름잡았지만 남아있는 기록이 많지 않아 일제강점기 탱고 역사를 설명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어떤 음악을 배경으로 스탭을 밟았는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수난의 기록’에 등장하는 ‘검은 눈동자’ 역시 왈츠풍의 노래로 탱고와는 잘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나라 첫 탱고풍의 노래는 1936년 5월 오케레코드에서 발표된 강남향의 ‘님사는 마을’입니다. 다소 느린 탬포의 곡으로 탱고 리듬을 일부 사용한 가요입니다. 탱고를 위해 만든 첫 가요곡은 1937년 기린레코드에서 발표한 ‘애상의 탕고’입니다. 발매일을 1935년 5월로 기록한 자료도 있다는 점에서 탱고사에서는 중요한 음반임에는 틀림없지만 아직까지 공개된 적이 없습니다. ‘생긋 웃고 돌아서는 새침한 레떼 허물없는 젊은 마음 불을 지핀다’는 가사는 김상화가 지었으며, 이기영이 작곡하고, 반짝 활동한 탓에 얼굴없는 가수가 되어버린 양춘수가 부른 노래인데요. 하지만 생각만큼 유행하지는 못했습니다.


탱고음악이 대중성을 갖게된 시기는 국민가수 현인이 부른 불후의 명곡 ‘서울야곡’이 발표된 1950년 즈음 부터였습니다. 탱고 같은 외국곡이 아니면 노래하지 않겠다는 고집으로도 유명한 현인은 부산 영도 태생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나이트클럽에서 ‘서울야곡’을 불러 밤무대의 황제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런데 ‘서울야곡’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으나 묻혀 있던 탱고곡이 있습니다. 현인의 고향 부산 영도에 위치한 코로나 레코드에서 발매된 ‘울어라 F선’인데요. “이 도시서 저 도시로 사랑해서 따라가는”으로 시작되는 이 곡은 동백아가씨를 만든 천재 작곡가 백영호의 초기 작품으로 지금껏 공개된 적 없는 노래입니다. 백영호는 1949년 ‘고향아닌 고향’으로 코로나에서 데뷔했는데, 데뷔 즈음 백영호의 음악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료입니다. 작사가 야인초가 가사를 쓰고 이성일이 부른 ‘울어라 F선’은 ‘서울야곡’ 만큼의 관심과 주목은 받지 못했지만 1940년대 말 부산 지역에서도 이미 탱고가 주류 음악으로 자리잡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데 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김문성 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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