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EU 부담 싫다”는 3년전 이혼선언, 경제 발목잡는 족쇄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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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합의안 부결]英도 EU도 당분간 ‘출구없는 혼란’
메이, 최악참패로 리더십 치명상… 여당 의원도 118명 반대표 던져
EU분담금-이민자 유입에 불만… 2016년 국민투표로 EU탈퇴 결정
EU와의 협상 여지 줄어들어… 英기업들, 물품난 우려 재고 비축

머리 4개 달린 ‘브렉시트 괴물’ 15일(현지 시간) 브렉시트 합의안 투표가 실시된 영국 런던 
하원의사당 인근에 브렉시트 반대파 시민들이 만든 조형물이 등장했다. 이들은 ‘브렉시트는 흉물덩어리’란 문구가 써진 괴물의 몸 위에
 테리사 메이 총리,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 마이클 고브 환경장관, 데이비드 데이비스 전 브렉시트장관(오른쪽부터) 등 브렉시트
 찬성파 정치인의 얼굴을 올려놓고 이들을 비판했다. 런던=AP 뉴시스
머리 4개 달린 ‘브렉시트 괴물’ 15일(현지 시간) 브렉시트 합의안 투표가 실시된 영국 런던 하원의사당 인근에 브렉시트 반대파 시민들이 만든 조형물이 등장했다. 이들은 ‘브렉시트는 흉물덩어리’란 문구가 써진 괴물의 몸 위에 테리사 메이 총리,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 마이클 고브 환경장관, 데이비드 데이비스 전 브렉시트장관(오른쪽부터) 등 브렉시트 찬성파 정치인의 얼굴을 올려놓고 이들을 비판했다. 런던=AP 뉴시스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남아야 하나, EU를 떠나야 하나?”

2016년 6월 이를 묻기 위해 실시된 국민투표가 장장 2년 7개월 동안 영국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수렁에 빠뜨릴 줄 아무도 몰랐다. 15일 영국 의회는 지난해 11월 영국과 EU가 간신히 합의한 브렉시트안을 230표라는 압도적 표 차로 부결했다. 지난 2년 7개월이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는 비판 속에 영국과 EU 모두 대혼돈에 빠졌다.

○ 사면초가 메이… 새 총리 후보군 급부상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었다. 특히 여당인 보수당 의원 314명 중 무려 118명(38%)이 정부안에 반대해 충격을 안겼다.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EU 탈퇴’를 주장하는 보수당 강경파가 ‘이별에 과도기를 갖자’는 메이 총리에게 반기를 들었다.

다만 보수당 의원들은 “브렉시트와 관계없이 총리는 지지한다”며 16일 오후 7시(한국 시간 17일 오전 4시)에 투표가 시작되는 정부 불신임안에는 반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불신임안 가결로 총리가 사퇴하고 조기 총선이 치러지면 노동당에 정권이 넘어갈 수 있다. 노동당 집권을 막자는 의견이 보수당을 포함한 보수 성향 정당의 대집결을 부를 것이란 관측이 많다.

불신임안이 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브렉시트 정부안에 대한 반대표가 예상보다 훨씬 많았던 데다 메이 총리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체 시 새 총리 후보로 사지드 자비드 내무장관, 제러미 헌트 외교장관,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 등 보수당 강경파가 거론된다. 특히 내각 실세 겸 파키스탄계 이민자 후손의 성공 신화를 쓴 자비드 내무장관이 주목받고 있다.


○ 시계제로 브렉시트

메이 총리가 실추된 리더십을 회복하려면 ‘백스톱(Backstop)’에 대한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백스톱은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간 충돌을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북아일랜드 분리독립 전쟁 후 1998년 체결된 벨파스트 협정에 따라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는 대신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국경을 사실상 없앴다. 양측의 통행 및 통관도 자유로웠다. 하지만 메이 총리가 EU 요구를 받아들여 ‘브렉시트 전환 기간인 2020년 말까지 북아일랜드를 비롯한 영국 전체를 EU 관세동맹에 잔류시키자’고 하자 보수파가 반발했다. 영국령 북아일랜드가 사실상 EU 영토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EU 역시 “백스톱 재협상은 없다”며 강경하다. 북아일랜드에서는 수백 년간 영국 잔류파 vs 독립파, 가톨릭 vs 개신교 간 유혈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브렉시트 논란 뒤에는 영국과 주변국의 이런 해묵은 역사 갈등이 있다. 유로 대신 파운드를 쓰는 섬나라 영국은 유럽 대륙과 거리를 뒀다. 중동 및 아프리카 난민의 유럽행이 급증하던 2016년 국민투표로 전격적 EU 탈퇴를 결정했지만 영국 정부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았고 국민 불만만 더 커졌다.

보수당 강경파의 주장대로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도 후폭풍을 예고한다. 관세 부과 등으로 경제에 엄청난 타격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 상당수 영국 기업들이 물품 부족을 우려해 재고 비축에 나섰다. 2016년 브렉시트 투표 이후 최근까지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가 약 14% 하락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파운드화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EU와의 결별을 위한 막대한 ‘이혼 분담금’ 부담에 극심한 내부 분란까지 더해져 영국 정부의 협상력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당분간 브렉시트 충격파는 더 세차게 몰아칠 것으로 전망된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영국#eu#브렉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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