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명랑하게… ‘네가 쓴 글 맞냐’ 사람들이 물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산문집 발표한 김소연 시인

김소연 시인은 “현재 한국 사회를 대변하는 키워드는 ‘혐오’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산문집은 ‘인간에게 사랑할 만한 점이 남아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소연 시인은 “현재 한국 사회를 대변하는 키워드는 ‘혐오’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산문집은 ‘인간에게 사랑할 만한 점이 남아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소연 시인(52)은 스스로를 ‘무심하고 날카로운 사람’이라 읽는다. 시도 그를 닮아 빛보다 어둠이 많이 서려 있다. 하지만 최근 펴낸 산문집 ‘나를 뺀 세상의 전부’(마음의숲·사진)는 살짝 결이 다르다. 1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작정하고 명랑하게 썼다. 지인들이 ‘네가 쓴 글이 맞느냐’고 할 정도”라고 했다.

“2014년 이후 3년간 자유롭게 쓴 글과 칼럼을 모아 엮었어요. 비극과 부정성에 대한 친화력을 바탕으로 살아왔는데, 이 시기에 정신과 문학을 재편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죠. 저 자신은 싹 지우고 직접 경험한 사람과 세상을 따뜻하게 기록했습니다.”

글쟁이로 살아온 지 20여 년. 기존 분위기를 떨치기란 쉽지 않았다. 새삼 육하원칙을 되새기며 덜고 빼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는 “담백한 문장은 전달력이 약한 것 같아 망설여졌다. ‘네가 정말 똑똑해지면 쉬운 글을 쓸 것’이란 대학 시절 은사의 말씀이 자주 떠올랐다”고 했다.

“문체도 문체지만 해석하고픈 욕망을 멈추느라 힘들었어요. 의견을 덧붙이지 않고 정황만 전달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예컨대 병원에서 겪은 의사의 태도나 식당에서 엿본 상사와 부하의 대화는 관찰 기록에 가깝죠. 용기를 내서 독자들에게 해석을 맡긴 겁니다.”

1993년 계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한 뒤 첫 시집 ‘극에 달하다’(1996년)를 시작으로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년), ‘눈물이라는 뼈’(2009년), ‘수학자의 아침’(2013년)을 냈다. 특히 산문집 ‘마음사전’(2008년)과 ‘시옷의 세계’(2012년), ‘한 글자 사전’(2018년)으로 두꺼운 팬 층을 형성했다.

“오래도록 쓰고 싶어서 산문과 시를 함께 씁니다. 각각 필요한 근육이 달라서 균형감각 유지에 도움이 되거든요. 시가 갱을 뚫는 고된 작업이라면, 산문은 심층까지 가지 않고도 할 말을 펼쳐 보이는 즐거움이 있지요.”

‘시대를 향한 응전력(應戰力·전쟁 등에 대응하는 힘)이 있는 시인이 되자’고 20대 시절 자주 다짐했다. 응전력은 세월의 강을 건너면서도 잃고 싶지 않은 중심축 중 하나다. 그는 “패턴을 읽는 능력은 세월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응전력을 잃지 않되 거시적 관점으로 시를 써 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부지런히 읽고 듣고 배운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까마득한 후배 시인과 독립서점을 팔로잉한 뒤 그들의 활동을 ‘구경한다’”며 “재미있고 공격적으로 문학하는 후배들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김소연 시인#나를 뺀 세상의 전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