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 한 푼이라도…” 곰탕 한 그릇도 문자로 주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4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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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점심시간 서울 중구의 한 빌딩 지하에 있는 A곰탕집. 20대 여성 두 명이 가게로 들어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다. 따로 직원을 불러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곧이어 곰탕 두 그릇이 나왔다. 290석 규모의 이 식당은 사람이 붐비는 점심시간엔 휴대전화 문자로 주문을 받고 있다. 테이블마다 휴대전화 번호가 주문방법과 함께 적혀 있었다. 이 식당의 주인 백모 씨(49)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가 치솟아 고민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두 해 연속 가파르게 상승하자 자영업자들이 인건비를 한 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A곰탕집이 이 주문방법을 도입한 건 지난해 중순이다. 백 씨는 지난해 최저임금이 2016년 대비 16.4% 오르자 인건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연 매출 10억 원 정도인 그의 식당엔 12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두 자릿수로 인상되면서 매달 200만~300만 원 가량의 돈이 추가로 나가게 됐기 때문이다. 백 씨와 아내, 친동생이 가져가는 돈이 세 사람의 인건비를 포함해 매달 1000만 원 수준이다.

오랫동안 같이 일해 온 직원을 해고하지 않으면서 주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인상 여파를 감당하기 위해 도입한 방법이 바로 문자 주문 시스템이었다. 손님 한 팀이 주문하기까지 통상 3~5분 정도 직원들이 응대하는데, 이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은 것이다.

도입 초기엔 문자 주문 시스템에 당황해하는 손님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인건비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하면 이해해 주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백 씨는 “올해 최저임금 상승분에 주휴수당까지 주면 시간당 1만1000원이 인건비로 나간다. 통상 5분 동안 손님 한 명(팀)을 응대하는데, 계산을 해 보니 한 명(팀) 주문 받는 데만 약 920원이 드는 셈이더라”고 말했다.

작년보다 최저임금이 더 오른 올해, 백 씨는 문자 주문으로는 한계를 느껴 조만간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한 주문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손님이 앱에서 주문하면 카운터에 메뉴가 등록된 후 자동으로 주문한 메뉴가 주방으로 전달되는 시스템이다. 앱에 손님의 카드가 등록돼 있어 나갈 때 결제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 또 일손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백 씨는 당초 무인계산기 3대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서빙을 해야 하는 식당에선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취소했다. 무인계산기 업체에 매달 내야하는 30만 원도 부담이었다. 앱을 이용하면 한 달에 수수료로 앱 회사에 3~4만 원만 주면된다. 백 씨는 “음식값을 올리지도 못하고 이게 최선의 방법인 거 같다”고 말했다. 그의 식당에서 파는 설렁탕은 7000원 수준이다.

백 씨는 “최저임금 인상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부작용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주변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국산보다 저렴한 중국산을 찾는 경향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다. 백 씨는 “중국산 품질도 좋아진데다가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자영업자들이 국산 농축수산물을 선택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국산 농축산물 소비 감소를 우려했다.

주변에서 최근 자영업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도 했다. 직원으로 일해도 매달 버는 돈에 큰 차이도 없고 사장으로 가게를 꾸려나가야 할 책임도, 마음고생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란다. 백 씨의 가게 직원들은 주말에 쉬지만 백 씨 부부는 주말에 둘만 나와 장사를 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비교적 덤덤하게 현 상황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그는 인터뷰 말미에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가게 규모를 줄여야 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줄여야 하는데…. 정부 당국자들은 김밥 한 줄이 1만 원이 돼야 현 상황의 심각성을 알려나….”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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