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키움 이승호, 세 명의 좌완 이승호 중 최고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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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월 14일 10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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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이승호. 스포츠동아DB
키움 이승호. 스포츠동아DB
키움 히어로즈의 2017년 테마는 ‘좌완 수집’이었다. 2018년 1월까지 다섯 차례 트레이드로 무려 여섯 명의 좌완 투수를 수집했다. 이승호(20), 김성민(25), 정대현(28), 서의태(22), 손동욱(30), 박성민(21)이 그 주인공이다. 대부분 20대 초중반으로 아직 리그에서 검증되지 않은 자원이었다. 즉시 전력감을 내보내는 대신 미래를 택한 과감함이었지만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검증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난해 키움은 이승호, 김성민을 쏠쏠히 활용하며 플레이오프(PO)까지 진출했다. 그 중에서도 이승호가 가장 두드러졌다. 이승호는 정규시즌 32경기에서 45이닝을 소화하며 1승3패 4홀드, 평균자책점 5.60을 기록했다. 진가는 포스트시즌(PS)에 드러났다. 준PO와 PO에 각각 1경기씩 선발등판했다. 2경기 합쳐 7.1이닝 2실점, 평균자책점 2.45로 호투했다.

장정석 키움 감독은 올 시즌 5선발로 이승호를 낙점했다. 하지만 14일 연락이 닿은 이승호는 “내 자리는 정해지지 않았다. 스프링캠프부터 시즌 내내 증명해야 한다”며 겸손한 자세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구역질나던 첫 PS가 안겨준 ‘경험치’

2017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 그는 시즌 초 팔꿈치 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았다.

이어 재활에 매진하던 7월 31일, 2대2 트레이드로 키움 유니폼을 입었다. 갑작스러운 이적이었다. 재활을 끝낸 지난해 6월, 이승호는 꿈에 그리던 KBO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던 그는 PS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맘껏 뽐냈다.

스스로 꼽은 2018년의 점수는 50점이었다. “다승왕을 하더라도 내 야구인생에 100점은 없다”고 밝힌 그는 “2018년은 분명 잘한 게 많지 않다. 하지만 배운 것이 많았다. 보여준 것 아닌 얻은 것, 경험치에 50점을 매기겠다”고 자평했다.

이승호의 경험치를 대폭 늘린 무대는 PS였다. 이승호는 한화 이글스와 준PO 4차전에 선발등판했을 때 헛구역질까지 했다. 당시 3.1이닝 2실점으로 조기강판됐는데, ‘한 번만 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거듭 되¤다. 기회는 SK 와이번스와 PO 4차전에 찾아왔다. 이승호는 4이닝 무실점으로 자신과 다짐을 지켰다.

“준PO 때 구역질까지 했다. 원래 긴장을 안 하는 편인데 준PO는 쉽지 않았다. 프로 데뷔전 때보다 힘들었다. 그런데 PO 때는 이상하리만큼 긴장이 안 됐다. 결과도 좋았다. 준PO와 PO 모두 1회 연속 볼넷으로 위기에 몰렸다. 준PO 때는 ‘어떡하지…’라고 걱정이 앞선 반면 PO 때는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레벨 1때 잡는 몬스터와 10때 잡는 몬스터의 수준이 다르지 않나. 난이도가 높은 만큼 많은 경험치를 준다. PS 경기가 딱 그런 것 같다.”

● 세 명의 이승호 중 최고를 꿈꾼다

KBO리그 역사상 이승호라는 이름은 세 명 있었다. 공교롭게도 셋 모두 좌완 투수다. 1999년 LG 트윈스에서 데뷔한 ‘큰’ 이승호(43·현 KT 위즈 불펜코치), 2000년 SK에서 데뷔한 ‘작은’ 이승호(38·현 상무 투수코치)에 키움 이승호까지. 작은 이승호는 2000년 신인왕을 받았으며, 큰 이승호는 2003년 탈삼진왕에 올랐다.

키움 이승호는 경남고 재학시절, 큰 이승호를 만났다. 당시 LG 스카우트였던 큰 이승호는 그에게 먼저 다가와 “나도 이승호다. 이름값을 해달라”며 호쾌한 인사를 건넸다.

쟁쟁한 동명이인 선배들에 비해 키움 이승호는 아직 이룬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목표만큼은 확실하다. “두 분 모두 대단한 선배들이지만 더 잘하는 이승호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올 시즌 1군 연착륙이 필수다. 지난해 12월 고향인 부산에서 개인훈련에 매진했던 이승호는 1월부터 고척스카이돔에서 하프 피칭과 캐치볼을 병행하고 있다. 장정석 감독은 올 시즌 5선발로 이승호를 낙점했다. 이승호도 기사를 통해 이를 알고 있다. 하지만 “선발과 불펜 모두 매력이 뚜렷하다. 감독님이 정해주시는 자리가 내 보직”이라며 “스프링캠프부터 정규시즌 내내 선발투수의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내 자리는 없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체력 강화가 필수다. 경남고 시절 밥 먹듯이 100구 이상 던지며 경기를 책임졌던 이승호의 프로 최다 투구수는 99구(2018년 9월 30일 고척 NC 다이노스전)다. 스스로 꼽은 원인은 재활 여파다. 머리는 100구 이상 투구했던 리듬을 기억하지만, 몸이 잠시 잊은 듯하다고. 자연히 겨우내 초점 역시 체력 증강에 맞춰졌다. 이승호는 “캠프 때 공을 많이 던져야 한다. 체력적인 부분부터 변화구 제구를 위해서 필요하다. 경기 전체를 이끌어가는 투수가 돼야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호의 궁극적인 목표는 태극마크다. 2019 프리미어 12부터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국제대회가 줄줄이 있다. 올 시즌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단지 군 면제를 위한 게 아닌, 선배들에게 숱하게 들은 태극마크의 무게를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PS가 그랬듯, 국제대회는 이승호에게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안겨줄 만한 무대다. 꿈 많은 소년 이승호의 발걸음은 이제 막 시작됐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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