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文대통령 발언에 격앙…“韓이 오히려 더 정치쟁점화”

  • 뉴시스
  • 입력 2019년 1월 10일 14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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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원칙론에 입각한 단호한 입장을 보이면서 “일본 정부는 겸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와 징용 배상 문제 등 과거 역사에 기인하는 현안들과 관련,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이들을 정치쟁점화 해서 논란을 확산시키는 것은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고 일본을 정면 비판했다.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서는 삼권분립 체제하에서 정부가 사법부의 판단을 훼손해서는 안되며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과 입장은 당장 일본 정부와 여론을 자극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문 대통령이 문제의 해법 보다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데 무게 중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회견을 즉각 보도한 아사히신문의 인터넷판 기사 제목은 “한국 대통령이 일본 비판 ‘정치가가 쟁점화, 현명하지 않다’”였다.

일본 정부와 언론계의 지한파 인사들은 뉴시스에 “한국 대통령이 일본을 훈계하는 거냐” “한일관계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과거로 돌아가 정치쟁점화는 쪽은 일본보다 한국 아니냐”는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의 신년 회견으로 한국 정부가 한일관계 현안들에 대한 원칙적인 해법을 강조할 것이 분명해짐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혹한기같은 한일관계는 더욱 냉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한일관계는 양국 국교수립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진단하고 있다. 양국 갈등관계가 구조적이고 다층적이라 해법도 쉽지 않다는 지적들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회견에서 표명한 한일관계의 인식에도 이런 점들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한일간에는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에다, 일본 초계기 저공비행과 관련한 ‘레이더 갈등’까지 돌출하고 있다. 여기에다 독도문제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같은 장기 고질병까지 감안하면 한일관계는 그야말로 한치앞이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점기 징용배상 판결에 이어 해당 일본기업에 대한 압류 승인이 내려진 데 대해 일본 정부는 9일 즉각 반발하면서 우리나라에 정부간 협의를 요청해 왔다. 물론 주일 대사도 초치했다. 이수훈 대사는 2017년 10월 부임이후 1년 2개월 동안 네 번씩이나 일본 외무성에 불려가는 곤욕을 치르며 한일관계의 냉탕을 톡톡히 맛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단 일본측 요청을 면밀히 검토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일본의 요청대로 정부간 협의에 응하더라도 여기서 이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희박해 보인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부속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서 청구권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우리 대법원의 판결 자체가 전후 한일관계의 근본을 흔드는 일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문 대통령 언급대로 사법부의 정당한 판결을 정부차원에서 훼손하기 어렵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 양국간 거리를 좁히기가 쉽지 않다.

문 대통령은 이날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기금이나 재단을 만들 생각은 없느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과거 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사법부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니 이런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생각해 볼 문제”라고 다소 여지를 남겨두었지만 이런 방식의 구체적 논의가 진행되려면 적잖은 시간과 여건 성숙이 필요해 보인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가 정부간 협의에 응하지 않거나 협의에 나와서도 시간을 끈다고 판단할 경우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관측된다.

요미우리신문은 10일 일본 정부가 이를 대비 국제재판 전문 변호사 선정 등 실무적인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것도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을 경우 아무 실효가 없지만, 일본 정부로서는 국제적 절차와 규범을 밟음으로써 국제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려고 하는 계산인 것으로 읽힌다.

이러한 절차와 방법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일본 정부는 결국 정치·경제·외교적 채널로 한국에 대한 전방위 압력을 가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이런 국면까지 가게 되면 한일관계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으로까지 몰려갈지도 모른다.

양국간 ‘레이더 갈등’도 갈수록 악화되는 양상이다. 한국은 일본 초계기에 레이더를 조사(照射)한 사실 자체가 없다면서 오히려 초계기가 위협적인 저공 비행을 했다는 주장이고, 이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있다.

일본 측에서는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레이더 주파수 공개를 꺼리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이를 드러내고 한국을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번 레이더 갈등 문제 같은 일은 한일 관계가 순조로울 때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사실 자체가 현재의 한일관계에서는 조그만 사건도 얼마든지 인화성이 커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한일관계는 하나하나의 현안들이 그 자체로 해결책을 찾아나가기가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만큼 역사적이고 구조적인데다 양국 모두 국내 정치적 여건이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전 정부의 이른바 적폐청산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와 징용배상 문제 등이 재론되고 있고, 일본에서도 아베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보수적 성향이 한국에 대한 강경기조를 북돋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현재의 한일 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실무적 차원의 접근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양국 관계에 대한 최고지도자 차원의 인식 전환과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개선 노력의 절반만이라도 일본에 쏟아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아베 총리는 자신이 총력을 기울이는 일본의 ‘정상국가화’는 일본 군국주의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에 대한 역사인식의 깊이를 더하지 않고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양국 지도자의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이런 노력과 인식을 발견할 수가 없어 양국 관계는 당분간 혹한기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4일에 있었던 아베 총리의 신년회견에서는 한국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예 나오지 않았다.

【도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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