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재영]집값 정책, 섬세해야 저항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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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산업2부 차장
김재영 산업2부 차장
“이 동네에 한번 와 보기나 한 건가요.”

울산 북구 송정지구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손모 씨는 ‘택지·도시개발 호재로 지역 단독주택 집값이 올랐다’는 국토교통부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울산 북구는 지난해 전체 주택가격이 11%나 빠졌지만 올해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은 되레 3% 오른 곳이다. 반발이 나오자 국토부는 ‘올릴 만해서 올린 것’이라는 식의 해명자료를 내놨지만 지역 주민들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집값이 오르면 공시가격이 따라 오르고 세금도 더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공시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정부의 목표도 바람직하다. 공시가격이 시세를 반영하지 못한 것은 해묵은 과제다. 주택 땅값과 건물값을 합쳐 산정하는 ‘공시가격’이 해당 대지의 ‘공시지가’보다 낮은 경우까지 있다. 건물값이 ‘마이너스’라는 얘기다. 수십억 원대의 고가 주택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 같은 문제를 들어 공시가격 전체를 거칠게 뜯어고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공시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부터 불투명하다. 국토부와 한국감정원은 시세 대비 공시가격 반영비율(현실화율)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적이 없다. 아파트는 대략 70%, 토지와 단독주택은 50% 수준이라고 말할 뿐이다. 지역별로, 주택별로 얼마나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지, 이를 어떻게 바로잡겠다는 건지 ‘로드맵’도 없다.

공식적으로 내놓을 만한 정교한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참고하는 자료는 거래가 성사된 주택·토지의 공시가격을 신고된 실거래가로 나눠 계산한 수준에 불과하다. 단독주택은 서울을 제외하곤 시군구 단위로 통계도 잡지 못한다. 거래가 드물어 통계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옆집이 5억 원에 팔렸으면 우리 집 시세도 대충 그 정도다. 하지만 위치와 모양이 제각각이고 거래도 뜸한 단독주택은 시세를 알기 어렵다.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한국감정원도 아파트를 포함한 주택종합가격으로 단독주택 가격 추세를 가늠할 뿐이다. 지역 집값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공시가격을 매기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결정된 ‘샘플’(표준지·표준단독주택) 가격에 ‘대량산정모형’을 적용해 개별 토지와 주택 가격을 정한다. 가격 변환 방식이 뭔지, 구체적으로 어떤 데이터를 활용해 정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방향은 있되 속도와 파장을 고려하지 않은 건 최저임금 정책과 꼭 닮았다. 시급을 올려주면 저소득층의 지갑이 두둑해지는 단순한 사안이 아님을 정부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최저임금도 못 줄 정도면 장사 접어라’는 비아냥거림에 많은 자영업자가 상처를 받았듯 “집값 올라 재미 봐 놓고 세금 못 낸다는 거냐”는 말은 지나친 비난일 수 있다.

별다른 소득 없이 집 한 채 가진 노인이 공시가격이 올라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고 있다. 다가구주택 공시가격이 오르면 세금 부담이 늘어난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 세입자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토지의 경우 공시지가 인상으로 토지보상비가 올라 정부의 부담이 늘 수도 있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아우성이 커진 뒤에야 정부는 부랴부랴 관계 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공시가격 현실화가 가야 할 길이라면 지금이라도 기준과 목표를 밝히고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가격 결정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공시가격을 토대로 국민들에게 매년 10조 원 가까운 보유세 청구서를 보내려면 그 정도 정성은 갖춰야 한다.
 
김재영 산업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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