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부딪혔던 美-터키, 시리아 쿠르드족 문제 두고 또 다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9일 14시 50분


코멘트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볼턴 보좌관 ‘문전박대’
중동 언론 “볼턴 보좌관, ‘빈손 조기귀국’ 모욕”
“터키, 시리아 내 쿠르드족 위한 완충지대 고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지난해 ‘관세분쟁’과 ‘미국인 목사 체포 사건’ 등으로 사사건건 부딪혔던 미국과 터키가 또 다시 맞붙었다. 이번에는 시리아 내 미군 철수 이후 남게 될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 문제가 갈등의 씨앗이 됐다.

8일 중동 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 등 현지 언론들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앙카라를 방문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모욕했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미군 철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터키를 찾은 볼턴 보좌관이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나지도 못한 상태로 ‘빈손 조기귀국’한 것을 두고 이 같이 표현한 것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갑작스러웠던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과 ‘중동 전문가’로 불렸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사임 이후 혼란스러워 하는 중동 국가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턴 보좌관을 중동 주요 국가에 급파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8일부터 약 1주일 동안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8개국을, 볼턴 보좌관은 이스라엘과 터키를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볼턴 보좌관은 터키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고 대통령실 대변인과 차관급 인사들과 회담에 만족해야 했다. 앞서 방문한 이스라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해 최고 안보 관계자들과 공식 만남을 가졌던 것과 비교해 회담의 무게감이 한참 떨어지는 것이다. 예정됐던 공동 기자회견도 취소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앙카라 의사당에서 열린 정의개발당(AKP) 의원총회 연설에서 볼턴 보좌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으로 환영을 대신했다. 그는 “터키에게 쿠르드족을 군사 표적으로 삼지 말라고 경고할 것”이라는 볼턴 보좌관의 발언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볼턴 보좌관은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누구도 볼턴 보좌관의 발언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볼턴 보좌관과 회의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터키는 미국이 지키려고 하는 시리아 내 ‘쿠르드족’을 터키의 분리주의 무장정파인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연계된 테러 조직으로 보고 있다. 터키 정부는 ‘올리브 가지(olive branch)’라는 작전명으로 수차례 쿠르드족을 상대로 군사 작전을 벌여왔다. 반면 미국은 시리아 내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이들과 손잡아왔다. 쿠르드족은 미국 무기를 손에 들고 사실상 모든 IS와 전투에서 ‘총알받이’ 역할을 해왔다.

만약 미군이 시리아에서 완전히 철수할 경우 터키 정부는 미국이란 방패를 잃은 쿠르드족을 상대로 대대적인 군사 작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8일 언론사들에게 발표한 별도 성명을 통해 “시리아 내 쿠르드족은 터키의 군사적 목표물이 될 수 있으며 이는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만약 터키가 쿠르드족에 대한 공격을 실행에 옮길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을 헌신짝처럼 버렸다’는 국제 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8일 미국 소식통을 인용해 볼턴 보좌관과 칼른 대변인은 회담 내내 평행선을 달렸다고 보도했다. 볼턴 보좌관은 “미국은 쿠르드족을 향한 어떠한 공격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고, 칼린 대변인은 “미국과 면밀히 협의하겠지만 반 테러 활동에 대한 군사작전은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며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MEE 등은 익명의 터키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터키 정부가 미군 철수 이후 시리아 내 평화를 위한 몇몇 방안을 담은 서류봉투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터키와 맞닿은 시리아 국경 남쪽으로 일부 완충지대를 둬 쿠르드족의 터전을 마련한다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미국과 터키 대표단이 완충 지대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카이로=서동일특파원 d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