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상/김지영]망했다? 새로 시작하면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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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원스토어 eBook사업팀 매니저
김지영 원스토어 eBook사업팀 매니저
어릴 적 괴짜 같은 버릇이 하나 있었다. 오늘 하루가 목표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조용히 눈을 감고 벽에 기대 열을 세고는 다시 눈을 떠 마치 아침에 막 일어난 양 새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었다. 소위 ‘오늘은 망했다’는 판단이 서면 좀처럼 잘해 볼 마음이 들지 않아 스스로 내린 일종의 처방이었다. 증상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시작증후군’쯤 될까. 열 살배기의 앙큼한 술수를 떠올리니 얼굴이 달아오르면서도 한편으론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시작증후군을 앓고 있기에…. 물론 이제는 그런 깜찍한 처방일랑 듣지 않는 때 묻은 어른이다.

2019년이 밝은 지 어느덧 한 주가 지났다. 연말연시 업무 마무리와 각종 모임, 가족 행사에 치여 좀처럼 엄두를 못 내다 뒤늦게 책상 앞에 앉았다. 빳빳한 새 다이어리에 새해 목표를 하나씩 꾹꾹 눌러 써 내려가는 순간은 사뭇 경건하다. 대부분 지난해에도 비슷하게 쓰여 있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터. 대표적인 새해 목표 스테디셀러인 운동, 독서, 영어 말이다. 이쯤 되면 ‘생의 목표’로 인정하고 넘어갈 법도 하다. 그러나 ‘평생 하겠다’와 ‘올해는 꼭 하겠다’는 어감이 많이 다르다. 새해를 빌미로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새해가 주는 힘은 이처럼 위대하다. “딱 하루 차인데 어쩜 그렇게 12월 31일이랑 1월 1일에 출석 차이가 많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잘 아는 헬스 트레이너의 말이다. 영어 학원이나 금연클리닉도 사정은 매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나를 포함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시작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이미 한 개비 피워버렸으니 ‘금연은 내년부터’랄지, 이미 한 주나 놀아버렸으니 ‘학원은 다음 달부터’ 등 죄책감과 해방감을 동반한 마법의 주문들을 외고 있다. 덕분에 헬스장 등록률은 연초를 피크로 우하향하고, 중고서점엔 앞장만 풀었다 지운 흔적의 영어 교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시간은 인간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는 기본적인 장치이다. 영화만 봐도 어딘가 고립된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날을 헤아리는 일 아니던가. 더 이상 시간의 경과를 가늠할 수 없게 될 때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이 된다. 기약 없이 긴 시간은 순간의 소중함을 간과하게 하기 때문이다. 일생 중 하루와 1년 중 하루가 갖는 오늘의 무게는 결코 같을 수 없다. 분명 어제와 같은 오늘일 뿐인데 ‘연도’라는 가상의 경계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명명하고 다시 나아갈 동기를 부여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날의 시작은 반드시 연도가 아니어도 좋겠다.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뜨는 앙큼한 속임수까진 아니더라도 내 나름의 시작증후군 처방을 내려 보는 것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해 중반 즈음 ‘올해는 망했다’며 포기하는 위험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낮잠을 한숨 푹 자고 일어나 뒷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것도,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말끔히 하고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일기를 쓰는 것도 좋겠다. 어차피 연월일시(年月日時)조차 가상의 경계에 지나지 않으니 핑계의 여지는 있다. 그러니 나도 당신도 올해에는 부디 포기 말라. 마음만 달리 먹으면 매 순간이 새로운 시작이다.
 
김지영 원스토어 eBook사업팀 매니저
#새해#연월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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