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구]샌드라 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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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그리고 난 한국 사람이거든!”

2005년 시작돼 현재 시즌 15가 방영되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끈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이 작품에서 주연인 외과 인턴 크리스티나 양(샌드라 오 분)은 동기 인턴인 이지가 중국인 환자를 데려오며 “중국에서는 그러지 않니?”라고 인종 차별적인 말을 하자 이렇게 당당하게 말한다. 당시만 해도 아직 국내에는 낯설었던 샌드라 오(한국명 오미주·48·시즌 1∼10 출연)가 미드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이 ‘사이다’ 대사가 계기가 됐다.

▷6일(현지 시간)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샌드라 오는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이날 시상식 사회도 봤다. 그는 사회를 시작하며 “두렵고 떨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선 건 여기 모인 청중과 함께 변화의 순간을 목격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골든글로브 시상식에는 그가 출연한 ‘킬링 이브’는 물론이고 ‘블랙팬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등 비(非)백인 연출자와 배우들의 작품이 대거 후보에 올랐다. 그의 말은 모든 배우가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실력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왔다는 뜻이다.

▷1960년대 캐나다로 이민을 간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캐나다도 아닌 미국, 그것도 인종차별이 공공연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 배우, 드라마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IMDb)에 따르면 샌드라 오는 “미국은 배우로서 캐나다보다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곳이지만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와 희생이 뒤따른다. 주류 사회에서 배역을 얻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술회했다.

▷그는 그레이 아나토미 출연 당시 중국계 입양아인 여자아이에게서 ‘저도 찢어진 작은 눈인데 TV에 나온 언니도 저랑 같네요. 참 예뻐요’라고 적힌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답장에 “너희 같은 아시안 친구들이 오랫동안 연기를 꿈꿀 수 있도록 꼭 롤 모델이 되겠다. 그것이 내가 더 열심히 연기하는 이유”라고 썼다. 변화를 꿈꾸고 이루려 노력하는 그가 참 아름답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골든글로브#샌드라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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