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신년사에서 “美가 싱가포르 합의 위반” 강조 왜?

  • 뉴시스
  • 입력 2019년 1월 2일 11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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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위윈원장의 신년사가 서방 언론으로부터 어느 때보다 큰 주목을 끌고 있다.

35세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세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 세차례의 북중정상회담 등 화려한 국제 외교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그런 그가 올 한해 북한의 대내외 국가전략, 특히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계기라는 점이 주목을 끄는 이유다. 특히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핵협상 교착상태를 그가 어떻게 평가하고 대응하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신년사는 지난해 벌어진 사건들을 낱낱이 평가하고, 올해 예상되는 대내외 정세 변화를 면밀히 검토한 뒤, 모든 변수를 아울러 대비책을 마련하는 전략전술 포석이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지난해 한반도와 국제 정세 변화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라는 점에서 올해 신년사 준비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가는 북한은 올해 신년사를 어느 때보다도 치밀한 준비를 거쳐 만들었을 것이다. 단적으로 김위원장이 넥타이를 맨 양복 정장차림으로 소파에 앉아서 신년사를 읽는 새로운 모습에서 북한의 준비 과정을 추정할 수 있다. 졸음을 참는 수천명의 청중 앞에서 한시간 가까이 엄숙하게 연설문을 읽던 지난 날의 북한 지도자들의 고루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올해 김위원장 신년사는 중의적(中意的)이면서도 비타협적이라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핵문제와 관련해 김위원장이 밝힌 입장을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가시가 많은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비핵화와 평화 정착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제재가 계속된다면 “새로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게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 점을 주목한 것이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평화와 협상을 강조한 메시지로도, 아니면 경고와 위협에 힘을 실은 메시지로도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김위원장이 분명하게 미국과 맞서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합의를 위반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을 강조한 대목이 그것이다.

김 위원장이 직접 ‘약속을 어긴 것은 미국’이라고 강조한 것은 심상치 않다. 트럼프 미 대통령 등 미국측이 걸핏하면 ‘김위원장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약속한 비핵화를 실행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김위원장은 ‘(제재 완화) 약속을 어긴 것은 미국이다.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도 양보할 생각이 없으며 그런데도 미국이 계속 제재를 지속한다면 새로운 길을 감으로써 미국에 책임을 묻겠다’고 천명한 셈이다.

이처럼 중의적이면서도 비타협적인 메시지를 낸 것은 북한이 미국내 정세를 어떻게 전망하는 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의회권력을 장악해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약화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다소 양보한다고 해서 북미 관계가 진전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언론이나 전문가들과 달리 북한과 협상을 이어가려는 한국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미대통령은 신년사를 긍정적 메시지로만 해석하고 있다. 이유는 두가지다.

우선 한미 양국이 여전히 현 시점에서 북한과 관계를 후퇴시키기보다 협상을 통해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김위원장의 경고 메시지가 한미 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대단히 조심스럽게 표현된 것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어색한 이중부정 표현은 꼭 해야할 말을 하기는 하지만 그때문에 너무 기분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김위원장은 또 북한의 비타협적 입장을 한국이 최대한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외세에 영향을 받지 말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자는 주문이 그것이다. 매년 제기한 요구여서 새삼스럽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개성공단, 금강산과 한미 연합 군사연습 중단, 전략무기 반입 중단 등 구체적 요구와 제안을 담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다. 과거에 비해 남북관계를 북미관계 못지않게 중시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한미간 틈을 벌리려는 의도 내지 북미 사이에서 한국이 중재 노력을 강화해달라는 채근으로 모두 해석가능한 대목이다.

그밖에 김정은 위원장은 “더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임을 밝혔다”고 강조했다. 이중 ‘만들지 않겠다’는 내용은 처음 공개 표명하면서도 이미 밝힌 것처럼 표현했다. 지난해 3월 방북한 특사단에게 했던 말을 이번에 공개한 것이다. 지난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도 밝혔을 가능성이 있다.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음을 강조한 것은 북미 핵협상이 교착되면서 북한이 핵무기 제조를 계속하고 있다는 의심이 커지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핵실험,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핵무기 대량생산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상충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지난해 북한이 핵무기 생산을 중단한 것으로 확인된다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함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윗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전파하지도 않겠다고 밝혔다. 또 언제라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준비가 돼 있다’는 PBS 방송의 보도를 인용하고 “나 역시 북한이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을 가진 것을 잘 인식하고 있는 김위원장과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고 썼다. 국무부 등이 신년사에 대한 공식 입장 표명을 미루는 가운데 나온 미국 정부 차원의 첫 반응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여러가지 복선을 깔면서 많은 것을 중의적으로 표현하려 애썼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문제를 단순화했다. 약속을 어긴 것이 트럼프인지 김정은인지 중요하지 않으며 “경제 발전을 원한다면 비핵화에 나서라”는 한마디다. 여전히 북미간 비핵화 협상은 갈길이 멀어 보인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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