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우선]“우리아이 안전하게 하소서” 부모들이 올리는 새해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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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한 해를 시작하며 신께 기도합니다.

올해는 우리가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다치거나 잃지 않게 해 주소서. 지난해 서울 상도유치원에 다니던 122명의 아이들을 구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붕괴가 반나절만 늦거나 빨랐어도 우리는 그 작고 귀여운 아이들을 영영 못 볼 뻔했습니다. 어른들의 나태함과 시스템의 방만함이 결합된 우리 사회는 위험의 연속입니다. 졸업여행을 간 아이들이 숙소의 빠진 보일러 배기관에 목숨을 잃습니다. 매일 가는 학교의 천장에서는 석면가루가 부서져 내려 아이들의 폐포에 박힙니다. 길을 걷는데 끓는 물이 솟구쳐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불완전함의 연속인 이 세상에서 아이들을 지켜주시길 기도합니다. 신의 가호를 바라나 천운만을 기대하지 않고 어른들 모두 각자가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도록 이끌어 주소서. 보일러공이든, 공사업자든, 자치구 직원이든, 정부의 정책 입안자든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어떤 식으로든 나와 내 가족, 이웃을 위한 일임을 깨닫길 원합니다.

올해는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소서. 과거 취재한 한 중학교 보건교사의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전교생이 600명인데 많을 땐 하루에 100명의 아이들이 보건실에 와 두통약, 배탈약을 받아간다고, 알고 보면 진짜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아프다고 말하고, 어디가 아프냐는 위로를 듣고, 약이라도 하나 받아가고 싶어서 오는 아이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중 제일 무서웠던 내용은 ‘정작 부모들은 아이들이 이렇게 아픈 줄 모른다’는 말이었습니다.

올해는 우리가 ‘모르는 부모’가 되지 않게 하소서. 부모들에게 자녀와 깊이 교감할 시간적 여유와 정서적 각성, 대화의 지혜가 허락되길 원합니다. 가정에서 위로받기 어려운 아이들도 많습니다. 언젠가 만난 한 어려운 지역의 고교 교감은 ‘올해 우리 학교에 전학 처분을 받아 옮겨온 아이 14명 중 12명이 결손 가정’이라고 했습니다. 이 아이들을 더 특별히 기억하소서. 부모가 아니더라도 올해는 친구, 선생님, 이웃, 하다못해 책 속의 어느 누구라도 만나 이들이 위로받고 기대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신이 그런 도움을 주는 이가 되게 하소서. 우리나라가 지난 10년간 가장 많은 아이들을 잃은 원인은 대형사고나 질병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병들어 가는 아이들이 어마어마하다는 이 불편한 진실을 우리가 용기 내 직시하고 답을 찾길 기도합니다.

지난해 서울대어린이병원 복도에 걸려 있던 장기 환아들의 시화 작품 중 ‘피자’에 대한 작품을 기억합니다. 병원 간식으로 나온 피자 한 조각이 너무 먹고 싶은데, 먹을 수가 없어 바라만 봐야 했던 아이의 속상한 마음, 꼭 나아서 먹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시였습니다. 올해는 그 아이가 마음껏 피자를 먹을 수 있도록 건강해지길 기도합니다. 아프고 장애가 있는 아이도 어려움 없이 공부하고 꿈꿀 수 있는 제도가 갖춰지길 원합니다. 우리는 종종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실은 걱정 없이 둘러앉아 피자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더한 행복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곧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부모가, 선생님이, 학교가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마음과 재능을 존중해 줄 수 있길 원합니다. 새로운 학교생활을 맞는 모든 아이들에게 사랑이 많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길 기도합니다. 마음이 통하는 선한 친구들이 넘치길 바랍니다. 선생님을 믿고 지지하는 학부모가 늘고 애쓰는 선생님이 더 큰 힘을 얻는 신뢰의 학교를 응원합니다. 2019년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새해기도#상도유치원#석면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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