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소확행’ ‘인싸’… 유행어의 사회학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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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들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확행’ 중 하나인 산책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여행객들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확행’ 중 하나인 산책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1889∼1976)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말과 글에 드러나니 언어를 통해 사람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겠지요.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18 유행어 설문조사’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유행어 1위는 28.8%를 차지한 ‘소확행’이었습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입니다. 소확행은 얼마 전 타계한 배우 신성일이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준비했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원래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나오는 말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거나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돼 있는 옷을 볼 때 느끼는 감정처럼 일상의 소소한 행복감을 뜻합니다.

2017년 최고 유행어가 욜로(YOLO·한 번뿐인 인생 최대한 즐기기)였던 것과 궤를 같이합니다. 갈수록 일상에서의 여유와 소박한 즐거움을 가치 있게 여기는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딩 선생이 강조했던 말입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유예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라는 면에서 소확행과 맥을 같이합니다.

유행어 2위는 ‘갑분싸’(18.5%)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는 뜻의 줄임말입니다. 대화 중 누군가가 분위기에 맞지 않는 썰렁한 발언을 했을 때의 상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명절에 고향을 찾은 젊은이들에게 어른들이 건네는 덕담 직후 ‘갑분싸’에 빠져드는 경우가 흔합니다. 삶의 가치가 다양하게 분화되고 피상적 인간관계가 보편화되는 시대에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못한 상황을 잘 반영하는 유행어입니다.

3위는 ‘인싸’(16.0%)였습니다. ‘인사이더(Insider)’의 줄임말로 무리와 섞이지 못하고 밖으로 겉도는 아웃사이더와 다르게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을 뜻합니다. ‘핵인싸’는 ‘아주 커다랗다’는 뜻의 ‘핵’과 ‘인사이더’의 합성어로, 무리 속에서 아주 잘 지내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조직 생활에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인싸’는 부러움과 시기의 이중적 뉘앙스를 풍깁니다. 개성이 분화되고 1인 가구가 빠르게 늘며 인간관계의 분절과 소외를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잘 반영한 유행어입니다. 혼밥, 혼술 현상이 확산되고 ‘싫존주의’(싫어하는 취향도 당당히 밝히는 젊은 세대)라는 또 다른 유행어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줄임말과 신조어의 유행은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또 집단 내 공감대를 넓히기도 하지만 집단 혹은 세대 간 의사소통의 단절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2019년은 황금돼지의 기운으로 모두의 행복이 커지고 의사소통이 잘되어 막힌 혈이 시원하게 뚫리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소확행#인싸#유행어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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