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직전 과감한 테스트…벤투의 복안 그리고 황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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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월 1일 04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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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0-0

아시안컵 본선을 앞두고 벤투 감독이 파격적인 실험을 진행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News1
아시안컵 본선을 앞두고 벤투 감독이 파격적인 실험을 진행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News1
지난해 8월 축구대표팀의 사령탑에 부임한 파울루 벤투 감독은 9월부터 11월까지 매달 2차례씩 A매치를 진행하며 큰 골격을 만들어 나갔다. 포백을 기반으로 그 앞에 2명의 수비형MF를 배치, 후방에서부터 차근차근 빌드업 과정을 거쳐 경기를 풀어나가는 형태가 기본 베이스였다.

벤투 감독은 칠레나 우루과이 등 우리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도, 호주나 우즈베키스탄 등 엇비슷한 팀과 겨룰 때도 비슷한 틀을 유지했다. 그는 “어떤 선수가 대표팀에 들어오더라도 팀의 철학, 큰 줄기는 같아야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벤투 감독 부임 후 첫 실전 대회인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개막을 앞두고 펼쳐진 마지막 평가전에서 적잖은 실험을 감행한 것은 꽤 흥미롭다. 그 과감한 테스트 속에서 황희찬이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축구대표팀이 1일 오전(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바니야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0-0으로 비겼다. 후반에 얻은 PK를 놓치는 등 골을 넣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으나 대표팀은 A매치 8경기 무패(4승4무) 흐름을 이으면서 대회에 돌입하게 됐다.

아시안컵 직전에 치르는 최종 모의고사였는데 벤투 감독은 지난 6번의 A매치와는 다르게 4백이 아닌 3백을 가동했다. 김영권을 축으로 권경원-김민재 3명의 센터백이 중심을 잡고 좌우에 윙백이 배치되는 형태였다.

틀도 의외였는데 배치시킨 면면도 흥미로웠다. 그 어떤 선수보다 공격력이 강점인 황희찬이 왼쪽 윙백으로 나서 오른쪽의 이용과 대치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선택이었다. 일종의 고육책이기도 했으나 또 한 편으로는 의도된 변칙 전술이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 나서는 23명의 엔트리 중 왼쪽 측면수비 자원은 홍철과 김진수다. 벤투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홍철이 1옵션이고 김진수가 차선이다. 하지만 현재 두 선수의 몸 상태가 완전치 않다는 전언이다. 홍철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도 몸에 부상이 있었다. 김진수도 큰 부상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다.

기존 자원들의 컨디션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대회에서 충분히 감안하고 또 염두에 둬야할 변수다. 이런 배경에서 벤투 감독은 변형 스리백 그리고 황희찬이라는 의외의 카드를 꺼냈다.

스리백을 가동했으나 좌우가 불균형을 이루는 형태였다. 오른쪽 윙백 이용은 위치를 뒤로 내리고 3명의 스리백들이 왼쪽으로 치우쳐 권경원이 왼쪽 풀백처럼 자리 잡는 빈도가 적잖았다. 권경원이 왼쪽 아래쪽을 커버하면 황희찬이 보다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받았다. 의도였다.

1차전 상대인 필리핀이나 2차전 키르기스스탄 등 한국보다 전력이 떨어지는 팀들을 상대로 공격적인 스리백 전술을 가동한다는 복안이며 그 속에서 황희찬의 기동력이 어떤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점검하는 무대로 접근이 가능했다. 그 2경기는, 상황에 따라 중국과의 3차전까지는 손흥민이 출전할 수 없다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측면 공격의 다른 형태는 분명 준비해야할 지점이었다.

선수들에게도 낯선 형태, 낯선 조합인 탓인지 경기 초반의 플레이는 매끄럽지 않았다. 처음 가동된 조합에 수비라인 호흡은 어수선했고 11월 평가전 때 나란히 빠졌던 기성용과 정우영 콤비가 복귀했음에도 후방의 안정적인 빌드업 과정은 보이지 않았다. 최전방 황의조도 고립됐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초반보다는 나아지는 흐름이 나왔고 고무적이게도 그 좋은 분위기를 이끈 선수는 황희찬이었다.

후반 들어 벤투 감독은 경기 중 변화를 꾀했다. 이청용과 황인범을 빼고 이재성과 구자철을 넣으면서 황희찬의 역할 비중을 공격 쪽으로 이동시켰다. 전체적으로 황희찬 카드를 높인 비중으로 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역시 ‘상대’에 대한 타개책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선택이다. 밀집수비가 예상되는 조별리그에서는 힘과 스피드를 앞세운 개인돌파로 흔들어 줄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고, 결국 손흥민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신뢰를 황희찬에게 주고 있는 듯한 벤투 감독이다.

벤투 감독은 후반 15분 황의조 대신 지동원을 넣으면서 구자철, 황희찬, 지동원을 배치하는 형태로 전방 구성을 바꿔 보기도 했다.

후반 중반 이후 대표팀은 이전과 다른 높은 점유율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축구를 펼쳐나갔다. 기성용과 정우영의 볼 배급이 활기를 띄면서 전체적으로 경기를 주도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후반 36분 아주 좋은 찬스를 잡았다. 황희찬이 박스 안으로 투입한 패스를 기성용이 받으려는 과정에서 골키퍼의 파울을 유도, PK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기성용의 킥이 벗어나 고개를 숙였다.

결과적으로 끝까지 득점은 없었고 경기는 0-0으로 마무리됐다. 후반 분위기가 계속 좋았기에 승리하지 못한 것은 아쉬우나 전체적으로 ‘테스트’라는 측면에서는 의미 있던 최종 모의고사였다. 상대팀 감독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수를 만들었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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