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규섭]선거제도 개혁, 개방형 공천이 먼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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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들, 표결 때 지도부 맹종 경향
이런 문제 개선 없이 연동형 도입 땐 특정 유권자 선호 법안만 발의할 듯
다당제 정착과 대화·타협 정치 위해선
지도부가 공천권 내려놓는 개방형 공천을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19년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2019년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시작하는 해다. ‘1987년 체제’가 지난 30여 년간 한국 정치의 ‘현재’를 만들었다면 ‘2019년 체제’는 한국 정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 분명하다.

‘1987년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대부분 공감한다. 거대 지역주의 정당을 출현시켰고 유권자들의 선호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다. 특히 득표율에 비해 군소 정당들이 확보할 수 있는 의석수가 적어 ‘비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다.

자연스럽게 정당 득표율에 따른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대표성 제고를 위한 방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현재 현역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의원 수를 늘려야 하는 점과 극단주의 성향의 정당 출현 가능성 때문에 갑론을박 중이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질문은 과연 비례대표제 확대가 대표성 제고로 이어질지 여부다. 이 주장의 핵심 논거는 현행 ‘소선거구 다수대표제’하에서는 득표율과 의석률의 괴리가 크니 비례대표를 늘려 ‘기계적 대표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대표성은 유권자들의 정책 선호가 대표될 수 있을 때 실현된다. 비례대표를 늘리면 ‘정책적 대표성’이 높아질까.

필자는 17∼20대 국회에서 처리된 약 300만 건의 표결기록(약 1만 개 법안)을 ‘W-NOMINATE 방식’으로 분석해 국회의원들의 표결경향을 분석한 바 있다. ‘W-NOMINATE’는 동일 법안에서 일관되게 함께 ‘찬성’ 또는 ‘반대’한 의원들을 통계적으로 군집화하는 방식이다. 연구자의 주관적 평가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의원마다 ―1(진보)에서 1(보수) 사이의 점수가 부여된다.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각 정당의 비례대표 의원들은 지역구 의원들에 비해 극단적인 표결경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17대 국회에서 통합민주당 지역구 의원의 평균 점수는 ―0.059점(진보에서 85.1번째)이었으나 비례대표의 평균 점수는 ―0.065점(진보에서 76.5번째)이었다. 18대 국회에서도 ―0.007점(56.2번째)과 ―0.127점(39.4번째)이었다. 19대 더불어민주당에서는 ―0.205점(70.1번째)과 ―0.499점(39.8번째)이었다. 현 20대 국회에서도 ―0.467점(79.1번째)과 ―0.609점(43.8번째)으로 비례대표의 극단적 표결성향이 여전했다.

보수정당의 비례대표 의원들도 정도는 덜했지만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17대 한나라당에서는 0.611점(221.0번째)과 0.695점(247.3번째), 18대 새누리당에서는 0.774점(198.0번째)과 0.761점(198.7번째), 19대 새누리당에서는 0.605점(214.1번째)과 0.621점(218.1번째)으로 비례대표가 더 보수적인 투표경향을 보였다. 마찬가지로 20대 자유한국당에서도 0.313점(235.1번째)과 0.327점(239.4번째)으로 비례대표 의원들의 표결경향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은 전체 유권자나 소속 정당의 지지층을 대표하기보다 당 지도부의 ‘친위대’ 성격이 강한 것이 수치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는 지역구 공천이 지상 목표인 대부분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의 정치생명이 당 지도부 손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는 바뀔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이런 상황을 손보지 않고 ‘기계적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면 한국 정치의 ‘미래’가 어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매우 특정한 유권자들의 정책선호만을 대표하는 극단적 법안들이 발의되고 여야 간 대립이 극에 달해 식물국회가 일상화될 것이다. 이는 ‘정책적 대표성’의 축소를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논하기 위한 선행 조건은 개방형 공천 제도다.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잠재적으로 다당제 정착을 돕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촉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각 정당의 지도부가 공천권을 내려놓는 공천개혁에 대한 논의가 우선이다. 공천개혁에 대한 논의는 전무한 상황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논의만 무성한 현 상황은 우려스럽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선거제도#선거제도 개혁#비례대표#공천#개방형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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