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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엔 폭력, 억압엔 억압… 피해자 될 바엔 가해자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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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엔 폭력, 억압엔 억압… 피해자 될 바엔 가해자가 되겠다”

이지훈 기자, 최지선 기자 , 김은지 기자입력 2018-12-22 03:00수정 2018-12-2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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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여성 우월주의 사이트 ‘워마드’ 게시물 39만건 의미망 분석

워마드엔 네 개의 계급이 존재한다. ‘여성’과 ‘여자’ 그리고 ‘남자’와 ‘한남’이다. ‘여권’ ‘역할’ ‘의무’의 연관어인 ‘여성’은 워마드 내 가장 계몽된 존재를 뜻한다. 워마드 유저들의 궁극적인 지향이다. 반면 ‘여자’는 아들 자(子)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워마드에선 배척되는 단어다. ‘약하다’ ‘조심’ 등과 연결돼 약자이고 권리를 침해받는 현실적 위치에 가깝다. 반면 ‘여자’와 이어지는 ‘남자’는 현실적으로 생물학적 여성들이 관계를 맺어야 하는 대상이다. 워마드의 분노 대상인 ‘한남’은 ‘여성’ ‘여자’와 단절된 최하위 계급이다.

이 같은 사실은 워마드 게시물 약 39만 건(댓글 포함)을 분석해 그려낸 ‘단어 관계지도’(지도 1)를 통해 드러난다. 이는 워마드 게시물의 단어를 모두 추출한 뒤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들을 중심으로 연관어들을 배열해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워마드 게시글 16만 건(2016년 10월~2018년 10월)을 분석한 '단어 관계지도'. 원의 크기가 클수록 게시글에서 언급되는 빈도가 높은 단어라는 의미다. 한 게시글 안에서 사용되는 단어 중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를 가진 경우 화살표로 연결했다. 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단어인 '한남'과 연결된 단어들은 욕설과 혐오 표현이 대부분이다. '여성'과 '여자'는 구분해서 사용됐다. 워마드에서 '여성'은 계몽된 이상향으로, '여자'는 약하고 권리를 침해받는 현실을 표현하는 단어와 주로 연결된다. '정치' '권력' '목소리' 등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단어가 많은 것도 눈에 띈다.
○ “여자는 성범죄·성적 대상화의 피해자”

‘여성’과 ‘여자’ 두 단어를 이어주는 말은 ‘피해자’다. ‘피해자’는 또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같은 성범죄, 그리고 ‘야하다’ ‘예쁘다’ ‘창녀’ ‘가슴’ 같은 성적 대상화 관련 단어와 이어진다(지도 1). 즉, 워마드 유저들은 여성을 성범죄와 성적 대상화의 피해자로 인식한다. 여성을 ‘피해자’로 만드는 주범인 남성은 워마드의 표적이 된다. 여성, 진보, 전라도 등 다양한 대상을 혐오하는 일간베스트저장소와 달리 워마드는 오로지 생물학적 남성, 그중에서도 한국 남자인 ‘한남’에게만 분노를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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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워마드에는 자신의 성범죄, 성적 대상화 피해 경험담을 공유한 글이 다수 올라온다. A 씨(19)는 “백화점이나 영화관, 학교 같은 안전할 것 같은 공공장소에서도 쉽게 몰카를 발견할 수 있어서 여성들은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시위 등 활동과 “더 이상 예쁨받으려 노력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탈코르셋 운동’으로 이어졌다.

○ “피해자 될 바엔 가해자가 되겠다”

‘피해자’ 워마드는 상처받은 존재가 되길 거부하는 대신에 가해자가 되는 방법을 선택한다. ‘강한 여성’이 되기 위한 무기는 미러링(mirroring·따라하기). 여성이 당했던 온갖 폭력을 성(性)만 바꿔 그대로 되갚아주는 방식이다.

폭력적이고 과격한 워마드의 미러링은 숱한 논란을 빚었다. 일부는 실제 범죄로까지 이어져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촬영’(2018년 5월) 사건의 가해자 안모 씨(25)는 20일 항소심에서 징역 10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본보 취재진이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게시글을 분석한 결과 워마드의 미러링 게시글 65건 중 일명 ‘인증샷’을 올려 구체적인 행위를 실행했을 것으로 보이는 게시글은 33건이었다. 이 가운데 2건만 실제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

‘미러링 단어’는 워마드의 또 다른 무기다. 워마드의 최대 조롱 대상 ‘한남’은 ‘김치녀’를 미러링한 단어다. 또 여성의 성기를 활용한 욕을 대부분 남성의 성기로 바꿔 부른다. ‘한남’ ‘남자’에 대한 비속어는 대부분 여성을 대상으로 했던 비속어의 ‘바꿔 말하기’에 해당한다.

○ 시위 기획·여론 선전 도모하는 ‘전쟁터’

폭력은 폭력으로, 억압은 억압으로 갚겠다는 워마드의 투쟁이 벌어지는 공간은 ‘놀이터’가 아닌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오락거리를 찾아 점점 많은 이들이 모여드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달리 워마드의 활동량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분석 결과 지난해에는 워마드에 11만여 건의 게시글이 올라왔지만 올해는 10월 말 현재 4만5000여 건에 그쳐 감소세가 뚜렷했다. 월 단위로 보면 지난해 2월엔 1만7000여 건의 게시글이 올라왔지만 올 10월엔 약 1000건에 그쳤다.

‘전쟁터’ 워마드 게시판 구조의 특징은 다른 오락 사이트와 달리 조직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충성도가 높은 소수 회원을 ‘헤비유저’로 만드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게시판은 크게 5개(자유게시판→베스트→프로젝트→워념글→데스노트)다. 일정 개수 이상의 댓글을 달아야 상위 게시판에 글을 작성할 권한을 받게 된다.

가장 정치적인 게시판은 ‘프로젝트’다. 이곳에서 워마드 유저들은 각종 오프라인 시위, 온라인 여론 확산 등을 기획한다. 지난해 3월부터 올 11월까지 프로젝트 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179건)을 분석한 결과 여성 대상 범죄 관련 기사에 여성 우호적인 댓글을 달고 법 개정 등 청원을 올리는 활동이 34.1%(61건)로 가장 많았다.

○ ‘햇님복권’의 숨은 뜻…“여성이기에 지지”

승리를 위해선 ‘힘’도 필요하지만 ‘권력’도 중요하다. 이에 대한 열망은 ‘정치’에의 관심으로 이어진다. 워마드 유저들이 성별 다음으로 많이 언급하는 건 ‘정치’다. ‘프레임’ ‘권력’ 등 정치 관련 단어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확산된다.

‘햇님복권’이 대표적인 워마드의 정치 행위다. ‘햇님’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뜻한다. ‘햇님’은 워마드에 달린 댓글에서 ‘여자’ ‘한남’ ‘한남충’ 못지않게 중요하게 언급된다(지도 2).

워마드 유저들은 박 전 대통령이 탄핵 과정에서 여성혐오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B 씨(18)는 “탄핵 과정에서 올랭피아 그림에 박 전 대통령 얼굴을 합성하고 성희롱이 쏟아졌다”고 비판했다. 김보명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은 “워마드엔 좌파도 우파도 없다. ‘햇님’은 그저 ‘여성 정치 지도자’라는 프레임이고 생물학적 여성이기에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비연애-비혼-비섹스-비출산 ‘4非’로 무장한 워마드 전사들 ▼
‘여성’과 ‘남자’를 잇는 단어에 연애-결혼-섹스-출산은 등장하지 않아

워마드 내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격론이 오가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절대적인 가치관이 있다. 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를 일컫는 ‘4B(非)’다. ‘여성을 피해자로 만드는 남성과는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분석 결과 ‘여성’과 ‘남자’를 잇는 단어 중 결혼, 출산, 연애, 섹스는 등장하지 않았다. 4B의 기저엔 가부장제가 있다.

“딸에게는 앱충(아버지)이 가장 위험하다. 초등학생 때 옆에 누우라고 하더니 손가락으로 가슴을 만졌다.” “딸인 나와 달리 남동충(남동생)의 반찬통에는 간장게장이 가득 담겨 있었다.”

워마드 유저들이 가부장제의 모순을 피부로 느낀 첫 공간은 가정이었다. 워마드 게시글 중 가족 구성원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125건을 분석한 결과 ‘아버지’를 비판한 글이 전체의 28.8%(36건)로 가장 많았다. 가장의 권위를 이용해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거나 아버지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했다고 고백하는 글이 다수였다.

아버지의 권위 때문에 유년시절에 겪었던 무력감은 “××을 터뜨리겠다” 같은 폭력적인 언어로 표출되고 있었다. 지도1에서 나타나듯 이들에게 ‘아비’는 ‘싫고’ ‘기분 나쁜’ 존재이며 ‘재기(자살)’해야 하는 존재다. ‘4B’ 중 하나인 ‘비혼’을 결심하게 하는 원인이 됐다.

어머니는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동시에 그에 순응하며 딸을 차별하는 가해자다. 딸이라는 이유로 남자 형제와 차별한 부모를 비난하는 글은 전체의 10.4%(13건)였다. 이들은 어머니의 결혼을 반면교사로 삼는다. 유년시절부터 지켜본 결혼은 ‘망혼’(망한 결혼의 준말)이며 결혼한 여자는 ‘노예’에 가깝다(지도 3).

게시글 분석에서도 결혼에 대한 반발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결혼 대상인 남자에 대해서 ‘열등’ ‘쓰레기’ 같은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했다. 결혼과 여성을 연결한 단어에는 ‘강간’ ‘강요’ ‘노예’ ‘억압’ 등 부정적 표현들이 다수 등장했다(지도 3).

본보 취재진이 인터뷰한 워마드 유저 12명 전원은 ‘4B 운동’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4B’로 여성을 착취하는 가부장제 고리를 끊어내야 여성이 ‘야망’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유저 홍모 씨는 “기혼여성이 듣는 ‘맘충’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데 왜 내가 내 발로 가부장제 구조의 피해자가 돼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여성 입장에서 결혼과 출산은 ‘하이 리스크-로 리턴(위험은 높고 긍정적 측면은 적다)’일 뿐”(오모 씨), “결혼은 여성을 가부장제에 갈아서 넣는 행위”(C 씨), “4B 운동은 이 나라를 우리가 망하게 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조모 씨)라는 주장이다.

여성학 연구자 김리나 씨는 “남자에게 감염됐다는 ‘남염’이라는 개념이 있다. 남염의 끝이 결혼”이라면서 “워마드에게 결혼은 남성과 관계를 맺는 최악의 방식이며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가부장제에 공모하는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 “과격 미러링으로 고립” vs “폭력성 원인에 주목을” ▼
워마드 여성운동 방식 놓고 논쟁

‘수컷 고양이 학대’ ‘호주 남아 성폭력 인증’ ‘홍대 남성 누드모델 불법 촬영’….

워마드의 과격하고 폭력적인 미러링(mirroring·따라하기)은 논란과 비난의 대상이 됐다. 워마드는 이를 통해 가부장제를 타파하고 여성 혐오를 지우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러링의 폭력성’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본보 취재진이 인터뷰한 워마드 유저 가운데 일부는 도를 넘은 미러링에 대해 회의감을 토로했다. 2년째 워마드 유저로 활동 중인 D 씨는 호주 남아 성폭력 인증글에 대해 “미성숙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인증 사진까지 올린 건 잘못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 씨는 “낙태 인증을 한 의도는 알겠지만 사람들은 거기까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라며 “워마드가 각성시키고자 하는 여성에게마저 거부감을 줬다면 실패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워마드가 모든 사안을 성별을 기준으로 이분법적으로만 접근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대 여성연구소 김보명 연구원은 “진정한 페미니즘과 성 평등을 위해서는 성별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젠더는 궁극적으로 해체해야 하는 대상”이라며 “오히려 워마드는 여성과 남성, 토대로서의 생물학적 이분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강릉 펜션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10명의 고교생이 피해를 입은 사건에 대해 이들이 남학생이라는 이유로 워마드에 조롱하는 글이 올라온 것도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워마드의 미러링은 여성 운동의 방식으로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여성협동학 박사과정 김민정 씨는 “워마드의 메시지가 20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만 피해자가 가해자를 미러링하는 방식의 운동으로는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베’ 게시물로 논문을 쓴 엄진 씨는 “‘워마드가 왜 폭력적인 집단이 됐나’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최지선·김은지 기자

#워마드#미투#미러링#여성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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