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선 내 조각상… 세계챔피언 우뚝 서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주민 복서’ 한국챔피언 길태산… 이주자의 날 기념 조형물 설치

카메룬 출신 권투 선수 길태산 선수가 18일 자신의 조각상 앞에서 두 주먹을 쥐고 웃어 보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카메룬 출신 권투 선수 길태산 선수가 18일 자신의 조각상 앞에서 두 주먹을 쥐고 웃어 보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조각상이 이렇게 클 줄 몰랐는데 얼떨떨합니다. 그래도 제 실물이 더 잘생긴 것 같아요.”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카메룬 출신 복서인 길태산(본명 장 에투빌·31) 선수는 1층 한복판에 세워진 자신의 조각상이 신기한 듯 한참을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장난스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높이 2.6m의 이 대형 조각상은 세계 이주자의 날(12월 18일)을 맞아 유엔 국제이주기구(IOM) 한국대표부가 진행한 ‘당신의 이웃은 누구입니까(My Migrant Neighbor)’ 캠페인의 일환으로, 조각가 이환권 씨가 재능기부한 작품이다. 길태산 선수는 올해 7월 슈퍼미들급 한국챔피언 타이틀을 따냈고, 그 후 세계챔피언 도전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

길 선수는 “한국챔피언이 된 후 받은 상금 212만 원을 카메룬에 계신 아버지에게 보냈다”며 “한국에서 살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다. 한국은 내게 꿈과 자유와 안전이라는 큰 선물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10월 경북 문경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 출전차 한국을 방문했을 때 카메룬 출신의 동료 복서 이흑산 선수와 함께 몰래 숙소를 빠져나와 난민 신청을 했다. 복서의 꿈도 이루고, 돈도 벌려고 카메룬 군대 소속 스포츠단에 들어갔으나 복싱과 상관없는 육체노동을 강요당하고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한국어도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한국 국적도 취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싱계의 큰 산(太山)이 되겠다는 의미로 ‘길태산’이라는 한국 이름을 짓고 한국에서 프로복서로 살고 있지만 그는 아직 법적으로 완전한 한국인이 아니다. 체류 허가 연장시기를 놓쳐 2016년 12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받은 은혜를 차근차근 갚아나가고 싶다”고 했다.

“10대 청소년들에게 종종 무료로 복싱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기부도 하고 봉사활동도 더 열심히 할 계획입니다.”

그의 원대한 ‘코리안 드림’을 닮은 대형 조각상은 31일까지 전시된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길태산#난민복서#슈퍼미들급 한국챔피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