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슈트라우스-브루크너 두 작곡가가 나눈 우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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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슈트라우스 2세(왼쪽)와 안톤 브루크너. 동아일보DB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왼쪽)와 안톤 브루크너. 동아일보DB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교향곡 작곡가였던 안톤 브루크너는 ‘늦깎이’ 음악가였습니다. 60세 때인 1884년 발표한 교향곡 7번에서야 세상의 인정을 받았죠. 하지만 길고 구조가 복잡한 그의 작품들은 그 이후에도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교향곡 7번 이후 8년이 지나 발표한 교향곡 8번에서 청중의 반응은 다시 차가워져 있었습니다. 126년 전인 1892년 12월 18일 빈 무지크페어아인 황금홀에서 이 곡이 초연되었습니다. 한 악장이 끝날 때마다 청중은 자리를 떴고, 마지막 악장이 끝났을 때 썰렁해진 객석에서 자리를 지킨 음악가는 한 세대 후배인 작곡가 후고 볼프와 한 살 아래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뿐이었습니다.

볼프는 빈 음악원 동기생인 말러와 함께 브루크너의 추종자였지만, 이 자리에 슈트라우스가 남아 갈채를 보낸 데는 묘한 기분이 듭니다. 슈트라우스는 브람스와 친했고, 그의 부인이 브람스에게 사인을 요청하자 브람스는 슈트라우스의 악보에 ‘브람스 작품이 아니라서 유감입니다’라고 적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빈 음악계는 ‘브람스적 보수파’와 ‘바그너적 혁신파’로 갈려 있었고, 브람스는 바그너식 음악 스타일을 사용한 브루크너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유쾌한 춤곡에 약간의 우수를 곁들인 왈츠와 폴카 곡들이었습니다. 브루크너의 작품들과는 공통점이 적습니다. 하지만 슈트라우스가 브루크너의 지지자로 분명한 자세를 드러낸 것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교향곡 7번이 초연되었을 때 그는 브루크너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굉장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경험이었습니다.” 브루크너는 이 전보를 읽고 크게 기뻐했다고 전해집니다.

새해가 밝으면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빈 신년음악회에 관심이 쏠릴 것입니다. 2019년 빈 신년음악회는 브루크너에게 애정을 보여 왔던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지휘합니다.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폴카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콘서트를 보면서, 슈트라우스와 브루크너의 ‘뜻밖의’ 우정도 기억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요한 슈트라우스 2세#안톤 브루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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