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컵라면… 반복된 비정규직의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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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火電서 숨진 김용균씨 유품 공개

11일 오전 1시경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점검 작업 중 몸이 끼여 숨진 김용균 씨(24)의 
유품. 석탄가루가 묻은 수첩과 고장 난 손전등, 건전지, 컵라면 세 개와 과자 한 봉지 등이 나왔다. 김 씨는 평소 정해진 
식사시간이 없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제공
11일 오전 1시경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점검 작업 중 몸이 끼여 숨진 김용균 씨(24)의 유품. 석탄가루가 묻은 수첩과 고장 난 손전등, 건전지, 컵라면 세 개와 과자 한 봉지 등이 나왔다. 김 씨는 평소 정해진 식사시간이 없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제공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는 착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우리도 같이 죽었습니다.”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김용균 씨(24·사진)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14일 기자회견에서 “이런 곳인 줄 알았다면 아들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살인병기’로 내몰겠느냐”면서 “옛날 지하탄광보다 열악한 게 지금 시대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오열했다.

김용균 씨는 11일 오전 1시경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의 소음 점검 작업을 하다가 몸이 끼여 숨졌다. 15일 공개된 김 씨의 유품에선 끼니를 때울 컵라면 세 개와 과자 한 봉지가 나왔다. 김 씨는 평소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위험한 곳에서 작업을 해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구의역 안전문 수리 중 전동차에 치여 숨진 김모 군(당시 19세)의 유품에서도 컵라면이 나왔다. 어둠 속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 김용균 씨가 직접 산 손전등은 고장 난 상태였고, 사고 당시에는 휴대전화 조명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전문대를 졸업한 김 씨는 올 2월 군 복무를 마치고 7개월 만인 9월 17일 태안화력발전소 현장설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1년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조건이었지만 3개월도 채 되지 못해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차 촛불 추모제에선 부모가 사준 정장과 구두를 신고 기뻐하는 김 씨의 영상이 공개됐다.

김 씨는 혼자서 컨베이어벨트 6km가량 구간을 점검하는 일을 했다. ‘설비 순회점검 구역 출입 시 2인 1조로 점검에 임한다’는 한국발전기술의 내부 지침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 컨베이어벨트에 설치돼 있는 ‘풀코드(정지) 스위치’도 혼자서 작업하고 있을 때에는 누를 수 없는 구조다.

또 전국공공운수노조 등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보령지청이 11일 오전 5시 37분경 서부발전에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서부발전은 오전 6시 30분경부터 약 80분간 김 씨가 사망한 컨베이어벨트에서 1m가량 떨어져 있는 벨트를 돌렸다.

서부발전이 국회에 태안화력발전소 관련 인명사고를 보고하면서 2011년 이후 발생한 사망자 4명을 누락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 씨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컨베이어벨트는 10월 실시한 안전검사에서는 합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고용부는 태안화력발전소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 나섰다.

김 씨는 사고 발생 열흘 전인 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나는 화력발전소에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외주화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이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16일 성명에서 “최근 주요 사고와 노동재해의 특징 중 하나는 ‘사내 하청’이자 ‘청년’이다.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안전사고와 중대 재해를 예방하고 책임져야 할 사용자의 의무까지도 하청업체로 외주시키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에 법·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

홍석호 will@donga.com / 태안=지명훈 기자
#비정규직의 비극#태안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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