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생계유지 어려워…실적도 안 좋은데” 꽁꽁 얼어붙은 연말 기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3일 1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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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열매 ‘희망 2019 나눔캠페인 출범식’. 동아일보 DB
사랑의열매 ‘희망 2019 나눔캠페인 출범식’. 동아일보 DB
서울 동대문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 씨(41)는 2005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2월 초 5만 원 정도를 모금단체에 꼬박꼬박 냈던 소액기부자였다. 하지만 올해 기부를 중단했다. 김 씨가 식당을 운영해 벌어들인 수익은 올해 20%가량 줄었다. 김 씨는 “5만 원이 큰 돈은 아니지만 형편이 어려워지다 보니 정말 필요한 것 외에는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됐지만 시민들의 온정이 담긴 기부는 얼어붙어 있다. 모금 단체들은 ‘기부 불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겨울철 대표적인 모금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의 ’희망2019나눔캠페인‘ 모금액은 13일 기준 약 812억 원이다. 지난해 같은 시기 917억 원에 비하면 105억 원 가량 줄어든 것으로 지난해 대비 88.6%수준이다. 희망2018나눔캠페인(2017년말~2018년 초)모금액은 4050억8900만 원으로 희망2017 모금액(2016년 말~2017년 초) 3872억1900만 원보다 4.6% 늘었다가 다시 감소세로 바뀐 것이다.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신규 회원들도 줄고 있다. 2016년 422명이었던 신규 회원수는 2017년 338명으로 줄었고, 올해 11월 말 기준으로는 186명뿐이다. 지하철 역 등에서 기부금을 모금하는 한국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액도 12일 기준 15억7900만 원에 그쳐 23억6100만 원을 모았던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3% 가량 줄었다.

사랑의열매에 따르면 기업 기부금이 줄어든 것이 전체적인 모금액 감소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다. 평균적으로 기업이 내는 기부금이 전체 모금액의 약 70% 가량을 차지한다. 서울의 한 중견기업 사회공헌팀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태’ 이후 기업에서는 ‘좋은 의도로 낸 기부금이 잘못 쓰이면 오히려 기업에 해가 돌아올 수 있으니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있다”며 “실적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기부를 해야 할지 내부적 고민이 많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가게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도 기부에 소극적이다. 당장 생계를 유지해나가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웃을 도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사랑의열매의 경우 2010년 이후 꾸준히 증가 추세였던 개인기부액 규모가 지난해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기부문화에 대한 불신감도 문제다. 지난해 기부단체 새희망씨앗 회장과 대표 등이 127억원을 횡령한 사건, 딸의 수술비 명목 등으로 받은 기부금으로 호화생활을 즐긴 이영학 사건 등이 터지면서 기부금 사용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졌다.

기부 문화가 ‘캐시리스’ 등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줄어든 만큼 현금 위주인 구세군 모금방식 등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의 모금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 변화에 걸맞게 모금방식을 다양화하고 기부금 사용의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시민들이 기부의 중요성에 관심을 가지고 이웃을 위해 적극 기부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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