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지하창고 방치된 ‘폐가전’ 화재 우려, ‘치워 달라’ 경고문 붙여놔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2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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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1시 40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아파트 지하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30여 분 만에 꺼졌지만 주민 30여 명이 긴급 대피했고, 배관을 통해 유입된 연기를 마신 30대 여성과 70대 남성은 병원으로 실려 갔다. 소방당국은 창고 천장을 지나는 하수배관이 얼지 않도록 감아놓은 열선에서 불이 시작됐지만 창고에 버려져 있던 가전제품과 쓰레기에 불이 옮겨 붙으며 화재를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건조한 날씨로 화재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가운데 아파트 지하주차장이나 창고에 방치된 폐가전제품 등 쓰레기가 화재를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세탁기나 선풍기 같은 플라스틱 재질의 가전제품에 작은 불씨만 붙어도 큰불로 이어질 수 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폐가전제품 같은 가연물이 많이 쌓여있을수록 작은 불씨가 쉽게 번질 수 있고 불이 붙으면 연기가 많이 생겨 위험하다”며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나면 순식간에 계단, 비상구를 통해 빠져나간 연기가 주민을 덮칠 수 있어 아주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화재가 발생했던 신림동의 아파트를 취재진이 12일 찾았을 때도 여전히 지하 창고에 버려진 가전제품이나 가구 등이 쌓여 있는 게 보였다. 또 주차장 한쪽에는 약 2m 높이로 전기밥솥, 선풍기, 진공청소기, 가스레인지 등 폐가전제품들이 쓰레기와 함께 쌓여 있었다.


이 아파트만의 일이 아니다. 취재진이 서울 관악구, 동작구, 영등포구 소재 아파트 10곳의 지하주차장을 살펴본 결과 8곳에서 방치된 가전제품이나 가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사를 하면서 버린 것으로 보이는 에어컨과 실외기, 선풍기, 전기밥솥, 전기레인지 등 낡은 가전제품이나 옷장이 대부분이었다.

A 아파트 지하 주차장 구석에는 에어컨, 실외기 등이 버려져 있었고 소화전 앞까지 전자레인지와 컴퓨터용 모니터가 방치돼 있어 접근이 어려웠다. ‘소화전 앞에 물건을 치워주세요’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었지만 소용없었다. B 아파트에는 버려진 캐비닛에 ‘화재 위험이 있어 일주일 내로 치워 달라. 치우지 않으면 관리사무소에서 임의로 폐기하겠다’는 지난해 4월 6일자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방치된 폐가전제품 등으로 빚어지는 화재 위험을 예방·관리하는 책임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몫이다. 관리사무소는 소방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요청해 치우거나 버린 사람에게 과태료를 물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가전제품 쓰레기를 치웠다가 주인이 나중에 나타나 ‘내 물건 어디 있느냐’고 따지면 난감해진다”며 “안내문을 부착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다른 아파트 관계자도 “오래 방치돼 있더라도 함부로 치우기는 어렵다. 잘못했다가는 우리가 물어줘야 할 수도 있다”며 “냄새가 나거나 너무 위험해 보여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경우 부녀회 등과 상의한 뒤에 치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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